환경(幻鏡)
1902년 사미계를 받았고, 1904년 수도차 금강산 순례에 나서 팔공산 동화사, 오대산 월정사, 양양 명주사, 설악산 오세암과 봉정암, 간성 건봉사, 금강산 유점사 등지를 거쳐 마하연(摩訶衍)에서 1년 동안 수행하였다. 1908년에 비구계를 받았고, 1919년 2월에 상경하여 백용성(白龍城)·한용운(韓龍雲)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지시를 받고, 파고다공원 3·1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24년 친일승 이회광(李晦光)이 은행에 저당한 해인사 토지 4,000여 두락을 17년 동안 연부상환하였는데, 당시 해인사 교무직을 맡고 있었다. 1926년 해인사 법당 앞의 석축 및 삼층석탑을 개축하였고, 조선불교유학생회의 잡지인 『금강저(金剛杵)』 간행을 후원하였다. 또한, 홍제암에 거처하며 사명당(四溟堂)의 구국충성을 주창하고 시조 『백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