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공일(盧公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노응규와 함께 최익현(崔益鉉)의 휘하로 들어가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최익현이 태인을 지나 순창에서 활약하던 중 붙잡히자, 노응규와 함께 피신하였다. 1906년 가을 충청·경상·전라 3도의 분기점이며 요새이기도 한 황간군(黃澗郡: 지금의 永同郡) 상촌면 직평(稷坪: 피뜰) 마을로 들어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창의군(倡義軍)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대장에 노응규, 중군장에 서은구(徐殷九), 선봉장에 엄해윤(嚴海潤), 종사관에 노공일이 추대되었다. 이들은 무기를 제조하고 군사를 모아 다가올 전투를 위해 맹훈련을 하면서, 일부 의병을 시켜 경부철도 등의 군용시설을 파괴하고 일본군의 척후병을 섬멸하게 하였다. 그러나 1907년 1월 21일 충청북도경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