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군(谷山郡)
운중면 용봉동의 신덕왕후 출생지에 1799년(정조 23) 왕의 친필로 ‘聖后私第舊基(성후사제구기)’라고 새긴 비를 세우고, 하람산(霞嵐山, 일명 河南山) 정상에는 태조이성계(李成桂)가 말을 달리던 곳이라 해 왕의 친필로 ‘馳馬舊基(치마구기)’라고 새긴 비를 세워 기념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15세기 중엽의 호구는 816호에 2,828명이었는데, 1828년(순조 28) 3,357호에 2만 9911명으로 증가하였다. 조선 후기에 여러 장시가 형성되었으나, 황해도 지역보다는 교통이 편리한 평안남도 성천·양덕이나 함경남도 문천·원산과의 교역이 더 활발하였다. 1811년 주민들이 탐학을 일삼던 도호부사 박종신(朴宗臣)을 몰아내기 위해 큰 폭동을 일으켰다. [근 대] 1895년(고종 32) 지방행정제도 개편 때 곡산군으로 되었다. 1919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