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덕(李孝德)
만세시위의 주동자로 6개월의 징역을 받고 1920년 4월 출옥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오빠의 독립운동으로 인한 가정의 고초, 그리고 자신의 병으로 고생하던 중 신앙을 새로이 발견하고 서울여자협성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인 1921년 3·1운동 2주년 기념시위를 주동하여 정학처분을 받았고, 1924년 졸업 후에는 태화 여자관 성경학교 교감, YWCA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전주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사감 및 교사로 재직하면서 전주 YWCA를 조직,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29년부터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총무로 취임하여 금주·금연을 위한 강연회와 가두계몽에 진력하면서 금주가도 보급하였고, 『절제』라는 월간지를 창간하였다. 또한 국산품장려운동, 색깔 있는 옷 입기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