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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영일기및계본등록(居營日記─啓本謄錄)

    출판문화재 | 문헌

     조선후기 무신 이운룡이 수군통제사로서의 업무 등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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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무신 이운룡이 수군통제사로서의 업무 등을 기록한 일지.공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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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1980년에 지정된 142-1호는 『거영일기』 1책과 『계본등록』 2책이다. 『거영일기』는 이운룡 장군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1605년(선조 38) 7월 30일부터 1606년 9월 1일까지 1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이다. 그는 1605년 7월 30일 도목정(都目政)에서 행경상우도 수군절도사겸 경상전라충청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사은숙배(謝恩肅拜)와 역사(歷辭)를 마치고 8월 29일에 도임하였다. 좌수사(左水使)와 동래부사(東萊府使)로부터 받은 왜(倭)와 관련된 정황, 만호(萬戶)나 대장(代將) 등 소속 군사에 대한 처벌의 경우, 풍수를 살피지 않고 함부로 배를 움직여 표류하고 잃어버린 경우, 수유(受由)를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 경우, 그리고 그의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었던 군사와 전함(戰艦) 점열(點閱), 조선소(造船所) 순시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계본등록』 2책 중 상권은 1605년 9월부터 1606년 7월까지, 하권은 1606년(선조 38) 7월부터 1607년(선조 39) 6월까지 수군통제사로서 국왕께 올렸던 장계(狀啓) 138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헌들에는 임진왜란 때 수군의 활약상과 화기(火器)·전선(戰船)에 관한 기록 및 그 전후의 수군편제(水軍編制), 인물·훈련과정·방비상태를 비롯한 각 진(鎭)의 군비상황, 수군력 강화와 정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95년에 지정된 142-2호는 교지(敎旨) 1매, 유서(諭書) 1매, 상서(上書, 等狀) 1매이다. 교지는 1607년 3월 2일 이운룡이 효충장의선무공신가선대부식성군(效忠仗義宣武功臣嘉善大夫息城君)에 책봉된 고신(告身)으로 전문(全文) 6행 33자이며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다. 유서는 이운룡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제사로 재임 중 병권을 장악한 일선 지휘관에게 발병시(發兵時)의 징표(徵表)인 부절(符節, 密符)을 내리면서 하사한 것이다. 전문 10행 116자이며, 유서지보(諭書之寶)가 찍혀 있다. 상서는 1758년(영조 34) 11월 유생 유량을 비롯한 안동·영천·예안·대구·청도·밀양 등 경상도 22개 지역의 유림 408인이 연명(聯名)하여 경상도 관찰사에게 이운룡을 제향하는 사묘(祠廟) 창건을 소청(訴請)한 등장이다. 이를 접수한 관찰사의 제음(題音)에 따르면 이 소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문 15행, 연명 50행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의 이우섭이 소장하고 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거영일기』는 이운룡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직하면서 쓴 일기인 만큼 당시 그가 처리했던 일, 행정문서의 절차 등 삼도수군통제사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임진왜란 후 왜의 동향을 살필 수 있다. 『계본등록』은 당시의 국방·수군제도·전선관계 등 전쟁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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