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팔작지불건물.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영천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던 정세아(鄭世雅)의 증손 호신(好信)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후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호를 삼휴(三休)라 하였으며,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자연을 벗삼아 작사(作詞)하는 데 뜻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정자에 걸려 있는 원운(原韻)을 살펴보면, 이 정자는 여울가에 자리하고 있어 물소리가 베갯머리로 스며들었고, 주위는 마치 푸른 병풍을 둘러쳐놓은 듯이 수많은 봉우리가 이어져 경승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천댐이 축조되면서 수몰당하는 운명에 놓여 지금은 옛자리를 굽어보는 산비탈로 옮겨져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락집으로 반육축(半陸築)되어 있으며, 기둥 가운데 앞줄의 5개만이 원주(圓柱)이고, 나머지는 육축(陸築:지면에 축조하는 일) 위에 초석(礎石)을 놓고 평주(平柱)처럼 세워져 있다. 평면의 4칸 가운데 중앙의 2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좌우 2칸에는 반칸의 전퇴(前退)를 두고 각기 1칸 크기의 방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