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마을은 운월산(雲月山, 617. 5m)에서 흘러내린 조그마한 하천을 따라 형성된 협소한 계곡 사이에 있으며 고인돌은 모두 19기가 확인되었다. 이들은 지난 1986년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제주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되었다.
고인돌은 하천(섬진강의 지류인 보성강의 한 지류)이 흐르는 방향과 동일한 동서방향을 따라 배치되었다. 또한 고인돌의 상석과 지하석곽의 방향도 거의 이와 일치한다. 이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모두 돌멩이모양[塊石狀]의 지석을 갖춘 남방식 고인돌로 하부구조에 있어서는 지하의 석곽구조가 뚜렷한 지하석곽형이 12기이고, 지석 자체가 매장시설의 벽 구실을 하는 돌돌림식[圍石式]이 7기에 이른다.
이 중 지하석곽형은 괴석형 또는 판석형 상석에 둥그스름한 지석을 6∼8매 고인 다지석식(多支石式)으로, 이는 바둑판모양의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하석곽은 폭이 좁은 장방형으로, 주로 잔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3매의 판석을 깔았는데 뚜껑은 대개 5∼8매의 판석을 이용하였다.
한편, 돌돌림식은 괴석형 또는 판석형의 상석을 8매 내외의 둥그스름한 지석이 받치고 있으며, 장타원형으로 둘러싼 지석이 매장부의 벽석(壁石) 구실을 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지하석곽형에서는 석곽 내에 붉은간토기[紅陶]가 부장되었으며, 석곽 및 뚜껑 주위에 뿌려진 제의용(祭儀用)으로 여겨지는 유물로는 민무늬토기파편과 간돌화살촉이 있다. 그러나 돌돌림식 고인돌에서는 별다른 유물의 출토가 없었다.
대광리 고인돌무리의 축조연대는 붉은간토기항아리, 간돌화살촉, 주변에서 수습된 홈자귀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들 유물들의 형식으로 미뤄볼 때, 이 유적의 연대는 민무늬토기시대 전기 말에서 후기 전반경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는 유물이 출토된 지하석곽형의 경우이고, 돌돌림식의 경우는 그보다 다소 떨어지는 민무늬토기시대 후기 중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