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공보(公輔), 호는 염헌(恬軒). 임장(任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선(任善)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임중(任重)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목사 이갱생(李更生)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5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평안도도사를 지냈으며, 1671년 정언을 거쳐 용강현령이 되었다가 1673년 교리로 승진되었다.
1676년(숙종 2) 청풍부사로 있을 때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0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에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1684년 대사간에 이어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686년 대사헌을 지내고, 1687년 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공조판서와 우참찬·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문명이 있었으며 송시열(宋時烈)을 유배시킬 때 전야(田野)에 방면할 것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염헌집』 10책과 『교거쇄편(郊居瑣篇)』이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