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의금부도사에 제수된 문신.
이칭
인길(仁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6년(명종 11)
사망 연도
1591년(선조 24)
본관
창녕(昌寧)
정의
조선전기 의금부도사에 제수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인길(仁吉). 증 예조판서 창산군(昌山君) 조계은(曺繼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별제 조응경(曺應卿)이고, 아버지는 판관 조세준(曺世俊)이다.

오윤겸(吳允謙)·김상용(金尙容)·이홍주(李弘胄)와 파산(坡山)에서 성혼(成渾)을 사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장원하였다.

기축옥사가 일어나 호남의 선비들이 연루되자, 소를 올려 그 억울함을 말하여 반대파의 미움을 샀다.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으니 반대파가 벌하고자 하였으나 이항복(李恒福)의 도움으로 영암의 서호(西湖)로 돌아갔다. 37세로 죽으니 주변의 사람이 모두 애석히 여겼다.

참고문헌

『송자대전(宋子大全)』
『기축록(己丑錄)』
집필자
김용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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