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 ()

문경 조령 관문 조령1관문
문경 조령 관문 조령1관문
자연지리
지명/지명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
이칭
이칭
새재, 문경새재,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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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령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 문경새재라고 하고, 한자로 조령(鳥嶺), 초점(草岾)이라고 표기하였다. 새재의 새는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억새, 속새라는 뜻이고, 재는 길이 통하여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관문으로 화강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지이다. 1966년에는 문경 조령 관문이 사적으로, 1981년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2007년에는 문경새재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
개설

동경 128°03′, 북위 36°45′에 위치하며, 높이는 642m이다. 마역봉(920m)과 깃대봉(835m)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66년에는 문경 조령 관문이 사적으로, 1981년에는 이 일대가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또 2007년에는 문경새재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새재 또는 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령(鳥嶺)이라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점·조령은 ‘새재’를 한자로 옮긴 표현[訓借]으로서 어느 쪽이든 선인들은 ‘새재’라고 읽었다. 초점·조령이라고 한자 소리대로 읽는[音讀] 방식은 옳지 않다. '새재'는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초점'이라 쓰인 이후, 16세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조령'과 '초점'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되었으며, 18세기의 『해동지도』 이후에는 '조령'으로 굳어졌다. 이때 '새재'의 '새(초·조)'는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곧 '새, 억새, 속새'라는 뜻이고, '재(점·령)'는 '길이 통하여져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이다.

자연환경

조령에는 백악기 석영반암, 흑운모 화강암, 각섬석 화강암과 시대 미상의 녹니석편암, 견운모편암, 천매암질 흑운모편암, 합력류질 천매암질암, 백화리 각석암, 흑색스레이트, 각종 천매암류와 고생대 오로도비스기의 회색결정질석회암, 석회규산연암 등이 분포한다.

조령의 동쪽 사면은 남쪽으로 흐르는 조령천(鳥嶺川)의 상류 하곡으로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팔봉강(八峯江)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주흘산(1,106m)조령산(鳥嶺山, 1,020m) 계곡 내에 위치한다. 표고는 400m 이상이 45.2%, 500~500m는 28%에 해당한다. 이 지역의 모암은 대부분 화강암으로서 비교적 강산성의 척박한 토양을 이룬다.

식물은 총 114과 888종이 출현하였고, 보호상 중요한 식물군락은 느티나무, 서어나무의 파편군락, 갈대군락, 달뿌리군락, 부처손, 바위손, 구실사리군락 등의 양치식물류이다. 포유류는 11종, 양서 · 파충류는 7종, 조류는 47종, 곤충은 241종으로 조사되었다.

형성 및 변천

철도가 없던 옛날에 서울∼부산 간의 주요 도로는 대개 이 고개를 통하였다. 동서 양편이 화강암의 절벽으로 되어 천연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축성한 제1 · 2 · 3관문과 부속 성벽으로 된 문경 조령 관문이 있다. 이 관문들은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어 시설을 축조하기 위하여 현지 실측이 시행되었다.

충주 사람으로 수문장 출신인 신충원(辛忠元)이 조정의 결정에 앞서 조령에 머무르면서 단독으로 설관(設關)에 착수하여 만든 첫 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에 크게 증축되어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 떨어진 곳에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 주흘관)이라 하였다. 이것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 숙종 때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고개 위에 조령산성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조령고개에 위치한다.

제3관문은 육축(陸築)만 남겨놓은 채 불타버려, 1977년에 복원되었다. 이들 제1 · 2 · 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 즉 서편의 마폐산 · 조령산을 연결하는 산릉(山稜)과 동편의 부봉(釜峯) · 주흘산(主屹山)을 연결하는 능선 사이의 조령천 계곡에 위치하여, 관문 좌우의 성벽이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현황

조령관문과 영남로 주변의 유적지들, 조령천 곳곳의 옥녀탕 · 용추 · 선녀소 등을 포함한다. 주변에 수옥폭포(漱玉瀑布) · 이체불(二體佛) · 혜국사(惠國寺) · 진남교(鎭南橋)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이 많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鎭)과 군창(軍倉)터 및 경상감사의 신임자와 후임자가 만나 서로 공문서에 날인하였다는 교구정(交龜亭)터 등이 남아 있다.

또한, 수안보온천월악산국립공원이 근접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충주와 문경, 점촌을 연결하는 국도 3호선이 이화령을 통과하며 접근도로는 문경읍 입구에서 조령 제1관문까지 약 5㎞ 정도의 2차선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조령에 가기 위해서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문경새재 IC를 지나 국도 3호선을 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문경읍까지 버스를 이용한 후, 문경읍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철도편은 대구-점촌-문경 연결선과, 영주-점촌 연결선 등이 있었으나 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따라 문경선 운행이 중지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문경새재 도립공원 자연생태계 조사연구 보고서』(경상북도 사회진흥과, 1998)
『지명유래집』(건설부국립지리원, 1987)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사』(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78)
「문경새재 일대의 삼림군락의 분류와 입지환경에 대한 식물사회학적 연구」(김헌규 외, 『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대회지』, 2007)
「지붕재료 '새[草]'에 대하여」(신종원, 『한국기와학보』 제7호, 2023.6.)
문경새재도립공원(saejae.gbmg.go.kr)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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