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3책. 목판본. 신흠(申欽)의 교정을 거쳐 1647년(인조 25)에 간행되었다. 권두에 신흠의 서문과, 권말에 김상헌(金尙憲)·정홍명(鄭弘溟)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 상·중에 시 790수, 권하에 사(詞) 3편, 부(賦) 4편, 잡저로 기(記) 9편, 가설(家說) 1편, 실기(實記) 1편, 서(書) 4편, 제후(題後) 1편, 의서(擬書) 2편, 송서(送序) 1편, 송(頌) 1편, 서(敍) 7편, 신도비명 1편, 제문 1편, 가요송(歌謠頌) 1편, 고유문 3편, 만(輓) 1편, 교서(敎書) 1편, 보유(補遺)로, 시 25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신흠은 서문에서, 그의 글은 제자(諸子)와 소식(蘇軾)의 글들을 가슴속에서 융합하여 창일한 기운으로 쏟아내는 것이 마치 봄에 저절로 꽃이 피고, 고였던 물이 터져나가는 듯하다고 평하였다.
황양동(黃楊洞)을 화양동이라고 바꾸면서 지은 「파관(芭串)」과 「황양동구(黃陽洞口)」가 있으며, 「독신선전(讀神仙傳)」 53수는 시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으로 그의 시사(詩思)를 알게 해주는 대표작이다. 또, 정철(鄭澈)에게 보낸 시와 관로에서의 교환(交驩)이 더러 눈에 뜨인다.
부와 사에는 기행과 기자묘에 관한 것이 있으며, 잡저 중 「역려재기(逆旅齋記)」는 자신의 방 기문으로 세속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방일한 사상이 노출되어 있다. 서(書)의 「답여방백서(答與方伯書)」 등에는 저자가 정철의 파직과 연루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 「금송(琴頌)」은 거문고를 노래한 저자의 자조(自嘲)로서 삶이 엿보이며, 「축망량문(逐魍魎文)」은 시사(時事)를 강개하여 비유적 수법으로 쓴 글이다. 보유의 시에는 방일한 구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