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만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여 황해도 해주 오찬근(吳讚根)의 집에서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광복회 채기중(蔡基中)·이병호(李秉昊) 등을 통하여 1917년 광복회에 가입하였고, 이어 무기 조달이나 특히 전라남도 광복회의 군자금 수합에 협력하였다. 이로 인하여 1918년 광복회 인사가 순국하고 또 옥고를 겪을 때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르는 동안 3·1운동이 일어났고, 출옥하였을 때는 독립운동이 국내외에서 활발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독립군조직과 연락하다가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였고 그 여독으로 죽었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