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 ()

김제평야
김제평야
자연지리
개념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작거나 거의 없는 넓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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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평야는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작거나 거의 없는 넓은 땅이다. 지형적 특징에 따라 퇴적평야와 침식평야로 나눌 수 있다. 퇴적평야는 하천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평야가 대부분 이에 속한다. 침식평야는 암석이 침식을 받아 평탄해진 지형으로 준평원·산록완사면 등이 있다. 우리나라 평야는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 발달했는데 가장 넓은 평야는 호남평야이다. 호남평야는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와 만경강 하류의 만경평야를 아울러 가리킨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야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거의 모두 수리안전답이 되었다.

정의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작거나 거의 없는 넓은 땅.
개설

우리나라의 평야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인 한국방향(남북방향)의 태백산맥낭림산맥이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야도 연속적으로 광대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고,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에서 분기해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국방향과 랴오둥(遼東) 방향의 산맥들에 의해 소규모 평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평야 중 비교적 규모가 큰 평야로는 김제평야만경평야나주평야김해평야논산평야예당평야평택평야김포평야재령평야평양평야안주평야용천평야 등을 들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평야는 지형적 특징에 따라 퇴적평야와 침식평야로 나눌 수 있다. 퇴적평야는 하천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하성퇴적평야와 바다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해성퇴적평야로 구분된다. 침식평야는 암석이 침식을 받아 평탄해 진 지형으로 준평원(準平原)ㆍ산록완사면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평야는 대부분 퇴적평야이며, 이들 평야의 핵심부는 대하천 하류에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범람원이다. 대하천 하류의 범람원은 후빙기 해수면 상승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부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형이다. 이러한 범람원은 빙기에 깊게 파였던 골짜기에 하천의 토사가 현재의 해수면을 기준으로 퇴적됨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람원의 해발고도는 10m 내외로 매우 낮다.

범람원은 자연제방과 배후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제방은 홍수 시 물이 하도를 넘칠 때 유속이 격감하면서 부유하중(浮遊荷重)으로 운반되던 토사 중 모래와 실트(silt)가 하도 가까이에 퇴적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그 결과 자연제방은 하천 양안에 형성되며, 주변 지형보다 고도가 높다. 반면 배후습지는 하도에서 멀리 떨어져 토사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 형성되며, 고도가 주변 지형에 비해 낮다.

자연제방은 인공제방과 달리 지면이 넓고 평평해 우리의 눈에 ‘제방’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큰 홍수가 지나갈 때만 가끔 물에 잠긴다. 이러한 곳은 취락의 입지에 유리하고, 어디서나 오래 전부터 농토로 이용되어 왔다. 반면 배후습지는 수초가 자라는 ‘늪’에 해당하는 지형으로 매년 발생하는 작은 홍수가 지나갈 때에도 물에 깊이 잠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인공제방을 쌓아 배수를 한 후, 대부분의 배후습지를 농토나 시가지로 개발하였다.

자연제방과 배후습지는 흔히 모든 범람원에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소개되지만 대하천의 하류에서만 볼 수 있다. 대하천 중ㆍ상류의 좁은 범람원에서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가 명확히 구분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근본적으로 범람원이 하천의 유로 변동과 관련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하천 하류의 범람원은 퇴적층의 두께가 홍수 시 하상(河床)이 파이는 깊이보다 훨씬 두껍다. 퇴적층이 이처럼 두꺼운 까닭은 빙기에 침식을 받아 낮아진 하도 중심의 저지대가 후빙기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하천의 토사로 매립되는 과정에 범람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최후빙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으며, 그것이 다시 지금의 수준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만 8,000년 전부터였다.

내용

우리나라의 평야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야의 핵심부는 대개 하천의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범람원이고, 평야에서 ‘들’이라고 불리는 곳은 거의 전부 이러한 범람원이다. 평야 주변의 구릉지, 즉 야산도 기복이 아주 작으면 평야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은 여러 면에서 범람원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하천의 범람에 의한 침수의 위험이 없을 뿐 아니라 대개 기반암의 풍화토인 적색토로 덮여 있고, 밭ㆍ과수원ㆍ목장ㆍ임야 등으로 이용된다. 구릉지의 논은 언덕과 언덕 사이의 골짜기, 즉 바닥이 깊어 물을 대기 쉬운 ‘고래실’에 주로 분포한다. 구릉지가 삼림으로 덮여 있으면 기복이 아무리 작아도 주민들은 이를 ‘산’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평야는 바다에 면해 있느냐 또는 바다로부터 격리되어 있느냐에 따라 지형의 구성이 달라진다.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 금강 하류의 논산평야, 낙동강 하류의 대산평야 등은 범람원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평야는 산지나 구릉지로 둘러싸여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이와 달리 조차가 큰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 만경강 하류의 만경평야, 안성천 하류의 평택평야, 삽교천 하류의 예당평야 등은 하천 양안의 범람원과 간척지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평야에서는 방조제가 바다 쪽 경계의 구실을 한다. 방조제는 낙동강 삼각주로 형성된 김해평야에서도 볼 수 있다.

평야는 동해안에도 발달되어 있다. 성천강 하류의 함흥평야, 수성천 하류의 수성평야, 용흥강 하류의 용흥평야, 형산강 하류의 포항평야 등은 동해안의 주요 평야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이들 평야에서는 사빈과 해안사구가 바다 쪽 경계의 구실을 한다.

호남평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평야로 흔히 소개된다. 호남평야는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와 만경강 하류의 만경평야를 하나로 아울러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평야는 서로 인접해 있을 지라도 지형이 분리되어 있고, 농업용수의 공급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두 개의 평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김제평야는 김제ㆍ정읍ㆍ부안의 3개 시군에 걸친 평야로 만경평야와 합치지 않아도 남한에서 가장 넓으며, 해발고도는 5m 내외로 매우 낮다. 김제평야의 개발은 1925년 동진수리조합(東津水利組合)이 출범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만경평야는 1922년 대아저수지(大雅貯水池)의 축조와 함께 개발이 시작되었다. 1936년에는 만경강 상류인 고산천에 경천저수지(庚川貯水池)가 건설되면서 만경평야의 관개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대산평야는 거의 범람원으로 이루어진 낙동강 하류의 내륙평야로 면적이 약 3,400ha에 이른다. 대산평야의 개발은 1912년 일본인 무라이(村井)가 약 2,000ha의 배후습지를 확보해 농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농장 주변의 넓은 자연제방은 1920년 설립된 대산수리조합(大山水利組合)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현황

대하천 하류의 평야가 오늘날과 같이 개발되기 전에 자연제방은 주로 밭으로 이용되었고, 배후습지는 대부분 자연상태의 습지였다. 하천 연안의 자연제방은 땅이 넓고 평평한데, 큰 홍수 때만 물에 잠겨 일찍부터 밭으로 이용되었다.

토양은 세사ㆍ점토ㆍ실트가 대략 비슷한 비율로 섞인 양토이고, ‘보명게’라고 불리는 이러한 토양은 매우 비옥한 토양으로 간주되었다. 배후습지는 여름철에 본류의 수위가 상승해 본류로부터 역수가 밀어닥치면 호소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하구 부근에는 갯벌을 중심으로 염생습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었다. 염생습지는 뻘이 쌓임에 따라 간석지가 넓어지는 동시에 점점 높아져 형성된 지형이다. 대조(大潮) 때만 바닷물이 들어와 간척의 최적지로 알려진 염생습지는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에 넓게 발달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평야는 20세기 들어 일제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고,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추진된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일반적으로 범람원의 개발은 제방의 축조와 수리시설의 확충, 그리고 간척지의 조성은 방조제의 축조와 관개용수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일제는 전국 각지에 수리조합을 설치하였다.

수리조합 중에서도 범람원을 개발하기 위해 설치한 것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다. 광복 당시 전국의 수리조합은 모두 598개였다. 이중 몽리면적이 1만ha 이상인 것은 전북ㆍ동진ㆍ연백ㆍ재령ㆍ평안ㆍ대정ㆍ중앙ㆍ함흥수리조합 등 8개였으며, 이들 수리조합의 몽리면적은 전체 수리조합 몽리면적의 약 40%에 달하였다. 남한의 대표적 수리조합인 전북수리조합과 동진수리조합은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의 넓은 농지를 관할하였다.

광복 후에도 정부는 근대적인 토목 기술과 대규모의 자본을 투입해 범람원 곳곳에 제방과 수리시설을 건설하였다. 범람원에는 제방 외에 배수시설을 설치해 수해에 대비했고, 관개용수는 대규모의 저수지를 조성하거나 강변에 양수장을 설치함으로써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수로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지면서 자연제방의 논은 밭으로 전환되었고, 개발되지 않은 채 버려졌던 배후습지는 비옥한 농토로 개간되어 평야지대의 경관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 평야지대의 논은 그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인해 거의 전부 수리안전답이 되었고, 가뭄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인한 수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수시설을 집중적으로 확충함으로써 수해를 최소화하고,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지리지-총론편-』(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08)
『한국지리-우리 국토의 자연과 인문-』(권혁재, 법문사, 2003)
『지형학』(권혁재, 법문사, 1999)
『한국지지-총론-』(건설부 국립지리원, 1980)
「호남평야의 충적지형에 관한 지리학적 연구」(권혁재,『대한지리학회지』12,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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