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기록된 김풍나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675년(문무왕 15) 2월 왕자 충원과 대감(大監) 급찬(級飡) 김비소(金比蘇), 대감 내말(奈末) 김천충(金天沖), 제감(弟監) 대마(大麻) 박무마(朴武麻), 제감 대사(大舍) 김낙수(金洛水) 등을 시켜 일본에 물품을 보냈다.
이때 내말 김효복(金孝福)과 함께 왕자 충원을 쓰쿠시(筑紫, 일명 九州)까지 호송하였다. 3월 14일 쓰쿠시에서 향연에 참석하고 곧 귀국하였다.
이밖에도 3월 중에는 고구려가 대형(大兄) 부우(富于), 대형 다무(多武) 등을 보내어 조공하고 신라는 급찬 박근수(朴勤修)와 대내말 김미하(金美賀)를 보내어 물품을 전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이러한 사행(使行)이 공적인 사행인지 사사로운 무역인지 알 수 없다. 고구려는 이미 망했는데 고구려가 조공사를 보냈다는 등의 내용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