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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불교문헌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으로 751년경에 간행된 불교경전.   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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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무구정광대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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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으로 751년경에 간행된 불교경전.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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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이 경은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였을 때, 제2층 탑신부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제 사리외함(舍利外函)에서 다른 여러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당나라 무주(武周) 말년인 장안 연간(長安年間, 701∼704)에 한역하여 대장경에 편입한 것이다. 멸죄연수(滅罪延壽)주 02)의 법을 구하기 위해 옛 탑을 수리하거나 조그마한 탑을 무수히 만들어 그 속에 공양토록 한 경전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이 판본은 너비 6.5∼6.7㎝의 책지 12장을 이어 붙인 것인데 좀이 슬고 벌레가 먹은 상태이다. 총 길이는 약 620㎝였으나 꾸겨진 부분을 펴고 부스러진 조각을 찾아 복원한 결과 그 길이가 642㎝로 늘어났다. 위·아래 변의 길이는 5.3∼5.5㎝이고, 그 사이 각 항의 글자 수는 6∼9자이며, 직경 약 4㎝의 붉은 나무기둥에 말아 놓은 작은 두루마리 책이다.
이것이 처음으로 공개될 당시의 상태는 비로 인한 습기 때문에 썩은 부분이 많고 벌레 먹은 부분이 많았으며 심한 산화작용으로 부스러지고 조각이 나서 책머리의 경 이름·한역자 이름과 본문 11항을 완전히 잃었다. 또한 본문이 약 250㎝까지는 5∼6㎝ 간격으로 1∼2항 전후에 걸친 글자를 잃었으며, 그것이 산산 조각난 상태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이하도 문자의 훼손이 계속되다가 권말에 이르러 완전하다.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을 위촉받고 특별 관리해 왔으나 20여 년이 지난 무렵에는 아예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문화재위원회는 1988년 9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5개월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 원형의 면모를 되찾고 떨어진 조각을 맞추어 잃어버린 본문 11항 중 4∼10항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이 목판인쇄물은 간기(刊記)가 없어 정확한 간행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학계에서는 이 경이 봉안된 석가탑이 751년(신라 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에 의해 불국사가 대규모의 가람으로 중창될 때 세워졌고, 그 탑 속에서 나온 주요 사리장엄구들이 신라시대의 조형양식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그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에 이 경과 함께 발견되었던 묵서지편(墨書紙片)이 모두 판독되면서 이 경이 인쇄된 시기는 약 10년가량 올라가게 되었다.
묵서지편은 1024년(현종 15)에 쓰인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와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형지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形止記), 그리고 1038년(정종 4)에 쓰인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와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추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追記) 등 총 4개의 문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이 경에 대한 언급은 1024년에 쓰인 무구정광탑중수기와 1038년에 쓰인 서석탑중수기에 나온다.
1024년에 중수된 무구정광탑은 탑이 만들어질 당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넣었기 때문에 이를 따라 탑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이며 중수기에는 창건년대가 천보(天寶) 원년(742)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서석탑은 다보탑보다 서쪽에 있으므로 석가탑을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며 이 또한 창건년대가 742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무구정광탑중수기가 석가탑 안에서 발견되었으나 무구정광탑은 석가탑이 아닌 다보탑이라는 주장이 있다. 중수기에서 탑의 해체를 기술한 부분을 보면 ‘대롱 모양의 기둥과 꽃술 모양의 기둥, 연꽃 모양의 통주(筒柱)’가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다보탑의 형상과 일치하는 것이며, 일제시대 때(1925년) 해체된 다보탑에서 반출된 오쿠라컬렉션(도쿄박물관 소장)의 금동원통형사리함 등이 ‘무구정광탑중수기’의 기록과 동일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무구정광탑을 다보탑으로, 서석탑을 석가탑으로 상정하면 두 중수기의 기록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24년 중수기에서 원래 탑에 있던 사리를 담는 용기(사리장엄구)와 그 내용물을 언급한 부분에서 두 종류의 ‘다라니경’이 있었다고 되어 있지만, 1038년 중수기의 같은 부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원래 다보탑에는 ‘다라니경’이 있었지만, 석가탑에는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1024년에는 지진으로 다보탑을 수리했는데, 1036년 잇단 지진으로 탑이 붕괴 위험에 놓이자 1038년에는 두 탑을 모두 수리했다. 이 때 다보탑에 있던 『다라니경』 2종 중 1권을 빼내 새로 석가탑에 집어넣은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다라니경』은 다보탑 창건 당시인 신라 때의 것이 맞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더욱이 1038년에는 이미 탑에 봉안하는 경전이 훨씬 대중적인 『보협인경』으로 바뀌었을 때이므로 중수 당시 새로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소형 목판본을 간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석가탑에서 발견된 다라니경은 신라 때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이 경이 신라시대에 인쇄된 것이라는 점에는 이미 밝혀진 몇 가지 증거가 더 있다. 첫째, 서체가 통일신라시대에 등장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새김이 고박하면서도 정교하여 어느 글자를 막론하고 모나고 굳센 필의에 원필이 격조 있게 곁들여지면서도 육조체(六朝體)의 고풍을 은은히 풍겨 주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둘째, 책지의 지질(紙質)이 신라의 전통한지인 닥종이이다. 셋째,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집권기인 690∼704년에만 쓰였던 무주제자(武周制字)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중국학자 가운데는 이 경이 당나라에서 입수하여 봉안한 당본(唐本)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이것은 책지의 지질, 글자체의 서법(書法), 무주제자의 검출에 대한 면밀한 실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빚어진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제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 770년경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경이 발견되었고, 이 경이 신라시대의 것임을 증명해주는 중수기까지 발견됨으로써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를 살펴보면, 전문을 완전하게 다 새긴 목판인쇄물이 아니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중에서 근본(根本)·자심인(自心印)·상륜(相輪)·육도(六度)의 다라니 4종만을 발췌하여 장단(長短) 2종으로 나누어 조그마한 나뭇조각에 새겨 도장 또는 스탬프를 찍듯이 날인한 낱장의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문 전부를 완전하게 새겨 글자면을 위쪽으로 하여 먹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말총과 같은 인체로 문질러 찍어내어 두루마리형식으로 장정한 책이다. 또 판각술에서도 훨씬 정교하며 글자체가 고졸(古拙)주 03)하고 힘이 약동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목판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완전하게 갖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판 축장본이 되는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목판본에서 인쇄한 두루마리 책
주02
죄를 씻고 수명을 연장함
주03
옛스러우면서도 투박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천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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