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건국지 ()

현대문학
작품
1907년, 박은식(朴殷植)이 정철(鄭哲)의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를 번역해 간행산 정치소설.
작품/문학
간행 연도
1907
작가
박은식
원작자
정철(鄭哲)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사건국지』는 박은식(朴殷植)이 『빌헬름 텔』의 중국 번안물인 정철(鄭哲)의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를 번역한 정치소설이다. 1907년 대한매일신보사에서 간행되었다. 정철은 쉴러의 원작을 영웅 빌헬름 텔의 군담물로 자유롭게 개작했고, 박은식은 이를 한문현토체로 거의 그대로 번역했다. 스위스의 독립 이야기는 열강들에 둘러싸여 국권이 위태롭던 한국의 상황과 겹쳐져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서사건국지』에 붙인 박은식의 「서」는 애국심을 배양하는 소설의 역할을 강조한 근대계몽기 소설론을 대표한다.

정의
1907년, 박은식(朴殷植)이 정철(鄭哲)의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를 번역해 간행산 정치소설.
번역 및 발간 경위

『서사건국지』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사에서 간행되었다. 첫 장에 “광동(廣東) 정철관공(鄭哲貫公) 저(著) 한성(漢城) 박은식(朴殷植) 역술(譯述)”이라고 밝혔다. 원작자 정철(1880〜1906)은 청말 혁명파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으며, 관공(貫公)은 그가 사용한 호 중 하나다. 정철의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는 1902년 중국 화양서국(華洋書局)에서 간행되었는데, 그가 일본 유학시절 접한 쉴러(Friedrich Schiller)의 희곡 『빌헬름 텔』(1804)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변개하였다. 박은식의 『서사건국지』는 정철의 중국어본에 국문으로 토를 단 정도로 내용 첨삭 없이 거의 그대로 번역했다. 한편 김병헌은 박은식의 국한문본을 다시 국문으로 번역하여 1907년 박문서관에서 『셔ᄉᆞ건국지』로 출간했다.

형식과 구성

『서사건국지』의 전체 구성은 겸곡산인(謙谷散人) 박은식의 「서(序)」, 「서사건국지목록(瑞土建國誌目錄)」, 「서사국계표(瑞士國計表)」와 본문으로 구성되었다. 본문은 총 10회의 회장체(回章體)로 이뤄져 있다. 각 장에는 8언 2구의 한문 제목이 붙어 있고 제목 뒤에는 사(詞)를 한 수씩 곁들였다. 예컨대, 1회의 제목은 “異國官毒下害民手 耕田佬大有愛國心(이국 관헌은 인민을 해하는 가혹한 수단을 행사하고, 밭가는 촌사내도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이다.

내용

『서사건국지』는 『빌헬름 텔』의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군담소설 풍으로 자유롭게 개작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2세기 유럽 중앙에 있는 서사(瑞士, 스위스)는 강한 이웃 일이만(日耳曼, 게르만)에 점령되어 재상 예사륵(倪士勒, 게슬러)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평소부터 나라를 회복할 뜻을 품고 있던 스위스의 영웅 유림척로(維林惕露, 빌헬름 텔)는 장대에 걸어 놓은 모자에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 화록타(華祿他, 발터)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히라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뛰어난 궁술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애국당(愛國黨)을 조직하고 일이만의 군대를 물리쳐 서사의 독립을 이뤘다. 유림척로는 상하 의원(議院)을 개설하고 공화정체(共和政體)의 기초를 닦은 후 스스로 재야로 물러났다.

의의 및 평가

‘정치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출간된 『서사건국지』는 근대계몽기 소설개량론과 소설의 정치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박은식의 「서」는 『대한매일신보』에도 「서사건국지역술서(瑞士建國誌譯述序)」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으며, 대한제국기 정치소설론을 대표한다. 이러한 소설론에 따라 박은식은 1911년 『천개소문전』, 『명림답부전』, 『몽배금태조』 등을 창작했다.

박은식의 「서」는 중국어본 중 조필진(趙必振)의 서문과 이계요(李繼耀)의 「소인(小引)」에서 중요 내용을 발췌하고 한국의 상황에 맞게 각색하였다. 박은식은 소설이 “풍속계급(風俗階級)과 교화정도(敎化程度)에 관계(關係)”가 크기에 “국성(國性)을 배양(培養)하고 민지(民智)를 개도(開導)”하기 위해 “황탄무계(荒誕無稽)”하고 “음미불경(淫靡不經)”한 구래의 소설들을 개혁할 것을 주장하며, 『구운몽』, 『소대성전』, 『장풍운전』 등 한국의 고소설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또 정철의 중국어본이 청말의 배만(排滿) 한족(漢族)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일이만을 ‘이족(異族)’의 지배로 비판한 반면, 박은식은 일본을 염두에 두고 일이만을 ‘강린(强隣)’으로 지칭한다. 정철이 “열강과 각축”하는 중국의 미래를 꿈꿨다면, 박은식은 한국이 “열강지간(列强之間)에 표치(標置)하여 독립자주(獨立自主)를 견고(鞏固)”히 하기를 기대했다.

스위스의 독립 이야기를 담은 『서사건국지』는 중국보다 한국에서 독자들의 더 큰 환영을 받았고, 국문본까지 출간되어 널리 읽혔다. 영토도 인구도 크지 않은 스위스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독립을 쟁취하고 중립국으로서 영구한 평화를 이룬 사례가 제국주의 열강들에 둘러싸여 국권이 위태롭던 대한제국 말의 한국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원전

박은식, 『서사건국지』 (대한매일신보사, 1907)
정철(鄭哲),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 (중국 화양서국(中國華洋書局), 1902)

논문

서여명, 「한·중 『서사건국지』에 대한 비교 고찰」 (『민족문학사연구』 35, 민족문학사연구소, 2007)
윤영실, 「동아시아 정치소설의 한 양상-『서사건국지』 번역을 중심으로」 (『상허학보』 31, 상허학회, 201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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