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우군동지총제, 운검총제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왕자의 난 때 선봉장으로 활약한 무신 · 공신.
이칭
시호
장양(莊襄)
이칭
마성군(麻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12년(태종 12)
본관
부여(扶餘)
관련 사건
제2차 왕자의 난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우군동지총제, 운검총제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2차 왕자의 난 때 선봉장으로 활약한 무신 · 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부여(扶餘). 서익은 일개 졸병이었으나, 창을 잘 쓰기로 이름이 높았다. 태종이 널리 무사(武士)를 구하던 조선 개국초에 우연히 발탁되어 태종의 심복이 되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일명 이방간의 난이라고도 함) 때 선봉장으로 활약, 이방원을 끝까지 호종하여 난을 평정한 공으로,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고,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고 마성군(麻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 1408년 풍해도조전절제사(豊海道助戰節制使)가 되었고 이어 운검총제(雲劍摠制) 등을 지냈다. 시호는 장양(莊襄)이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집필자
이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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