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成佛寺)는 신라 말기에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正方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이다. 1327년에 나옹이 응진전을 비롯한 산내 암자에 15기의 석탑을 안치하였다. 1453년 관찰사 배환 등이 수륙재를 개설하여 악병을 없앴다고 한다. 1569년 승려 설숭이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진되었다. 1632년 정방산에 축성 이후 해서지방의 종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31본산으로서 36개 말사를 관장하였다. 1924년 주지 보담이 중수했다.
성불사(成佛寺)는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이 정방산(正方山)에서 주1의 땅’으로 창건하였다.
1327년(충숙왕 14)에 나옹(懶翁)이 성불사 응진전을 비롯한 산내 암자에 15기의 석탑을 안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공민왕 23년(1374)에는 극락전이 건립되는 등 20여 채의 승료와 1,000여 명의 거승, 주2가 10곳, 석탑이 15기였다. 안팎에 범패 소리가 서로 이어지고, 단청의 금빛이 찬란하여 사찰의 웅장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특히 응진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심원사 보광전과 함께 고려 말기를 대표한다.
1453년(단종 1) 관찰사 배환(裵桓) 등이 악질 토지를 위한 수륙재를 개설하였다. 1569년(선조 2) 승려 설숭(雪崇)이 주3, 임진왜란으로 소진되었다. 1632년(인조 10) 정방산에 성을 쌓은 이후부터 성불사는 해서지방의 종찰이 되었다.
1650년(효종 1) 승려 언택(彦澤)이 중건하였고, 1684년(숙종 10)에 승려 도행(道行)이 장륙 탱화를 조성하고, 민귀(敏歸)는 400근 짜리 대종을 주조하였다. 1709년(숙종 35)에 필형(弼浻) 등이 갑계를 창설하여 명부전의 성상들을 조성하였고, 2년 뒤에는 명부전 건물을 세워 봉안하였다. 1751년(영조 27)에는 승려 찬훈(贊訓)이 수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성불사가 31본산 중 하나로 36개 말사를 관장하였다. 1924년 주지 보담(寶潭)이 수리하였다. 성불사에는 5층 석탑을 중심으로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산신각 등이 있다. 홍난파 작곡의 가곡 「성불사의 밤」의 무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