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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의 의식음악. 범음 · 어산 · 인도 · 인도.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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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음(梵音), 어산(魚山), 인도(印度), 인도(引導)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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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의 의식음악. 범음 · 어산 · 인도 · 인도.
내용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이며, 가곡 ·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범패는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이며, 재를 올릴 때 쓰는 의식음악이라는 점에서 서양음악의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와 비슷하다.

보통 우리 나라의 범패는 신라의 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같이 되어 있다. 진감선사는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에 의하면 804년(애장왕 5)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한 뒤, 옥천사(玉泉寺), 즉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

그러나 범패가 그 전에도 우리 나라에 있었다는 것은 ≪삼국유사≫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조(兜率歌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760년(경덕왕 19)에 하루는 해가 둘이 떠서 서로 교대하여 해가 지지 않는 괴변이 생겼다. 이때 일관이 말하되 “범패승을 데려다가 <산화공덕 散花功德>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괜찮을 것이라.” 하여, 왕이 단을 쌓고 범패승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이라는 승려가 지나가므로 왕이 불러 범패를 부르라 하니 그 승려는 오직 향가만을 알 뿐 범패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진감선사 이전에도 범패를 부를 줄 아는 승려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진감선사와 같은 시대 사람인 일본 승려 원인 자각대사(圓仁慈覺大師)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 의하면, 중국 산동반도 등주(登州)의 적산원(赤山院)이라는 신라인의 절에서 불린 범패가 당풍(唐風)과 향풍(鄕風:新羅風), 그리고 당나라 이전에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고풍(古風:日本風),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범패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배워 온 범패란 이 가운데 당풍이었다고 하겠다.

현행 홋소리의 선법도 옛날 신라의 영토였던 동부지방 민요의 그것과 같다. 고풍의 범패는 당풍이나 향풍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당풍 범패 이전에 서역에서 들어온 범패일 것 같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범패가 상당히 성행하였으리라고 짐작은 되나 문헌이 없어 잘 알기 어렵다. 다만 고려의 역대 왕들이 연등회(燃燈會)를 성대히 행했으며,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왕궁에 설하고 대규모의 도량을 설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범패도 성행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범패는 대휘화상(大輝和尙)이 쓴 ≪범음종보 梵音宗譜≫(1748)에 의하여 상세한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국융(國融)-응준(應俊)-혜운(惠雲)-천휘(天輝)-연청(演淸)-상환(尙還)-설호(雪湖)-운계당법민(雲溪堂法敏)-혜감(慧鑑)-순영(絢暎) 등 많은 범패승의 이름이 보인다. 이 밖에 ≪신간산보범음집 新刊刪補梵音集≫(1713) 등에도 상당히 많은 범패승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1년 6월에 사찰령이 반포되고 그 취지에 따라 이듬해에 각본말사법(各本末寺法)이 제정되자 조선 승려의 범패와 작법(作法)이 금지되었다.

화청과 법고춤 같은 것을 금한 각본말사법 시행 이후 범패도 쇠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 망하여 없어지지는 않았다. 경만 읽고 범패를 부르지 않는 절에는 재가 들어오지 않아, 재가 있는 한 범패는 존속하였다.

다카하시(高橋亨)의 ≪이조불교 李朝佛敎≫(1929)에는 “근년까지 경성 교외 백련사(白蓮寺)에 만월(滿月)이라는 노승이 있어 범패로 유명하였다. 원래 경성의 동서산(東西山)에 각각 만월이 있어 선성(善聲)이 서로 백중하였다. 이만월은 즉 서만월(西滿月)이라고 한다.” 라고 적고 있다.

백련사 이만월(李滿月)의 제자로는 백련사의 이범호(李梵湖), 봉원사(奉元寺)의 이월하(李月河), 진관사(津寬寺)의 김운제(金雲濟)가 있었고, 동교(東郊)의 이만월의 제자로는 경국사(慶國寺, 靑庵寺)의 대원(大圓)과 영도사(永度寺, 開雲寺)의 전우운(田雨雲), 신흥사(新興寺)의 완담(完潭), 화계사(華溪寺)의 동화(東華), 흥국사(興國寺)의 표금운(表錦雲) 등이 있었다.

범패는 주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 수륙재(水陸齋) · 영산재(靈山齋) 등 다섯 가지 재에 쓰인다.

(1) 상주권공재

죽은 자를 위하여 행하며 보통 하루가 걸린다. 가장 규모가 작은 재로 49재나 소상(小祥) · 대상(大祥) 때 흔히 이 재를 행한다. 무속의 진오귀굿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범패승이 처음 소리를 배울 때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상주권공부터 배우게 되는데, <할향 喝香>부터 시작하여 <합장게 合掌偈> · <개계 開啓> · <쇄수게 灑水偈> · <복청게 伏請偈> · <사방찬 四方讚> · <도량게 道場偈> · <참회게 懺悔偈> · <헌좌게 獻座偈> · <가영 歌詠> · <등게 燈偈>……의 순으로 배운다.

이 곡목 중 끝에 ‘게(偈)’ 자로 된 곡의 사설은 한문의 4·5언 또는 7언의 4구로 되어 있는 한문의 정형시이다. 그러나 ‘게’ 자가 붙지 않은 <개계> · <유치 由致> · <청사 請詞> 등은 시가 아니라 한문의 산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보소청진언 普召請眞言> · <보공양진언 普供養眞言> 등 진언이라 한 것은 한문 사설이 아니라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Sanskrit:고대 인도어)로 되어 있다.

(2) 시왕각배재

일명 대례왕공문(大禮王供文)이라고도 하며, 상주권공재보다는 약간 규모가 크다. 주로 재수를 위하여 드리는 의식으로 저승에 있다는 10대왕(十大王)에게 자비를 비는 것이다.

시왕이란 진광대왕(秦廣大王) · 초강대왕(初江大王) · 송제대왕(宋帝大王) · 오관대왕(五官大王) · 염라대왕(閻羅大王) · 변성대왕(變成大王) · 태산대왕(泰山大王) · 평등대왕(平等大王) · 도시대왕(都市大王) ·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가리킨다.

(3) 생전예수재

죽어서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생전에 미리 지내는 재이다. 무속의 생(生)오귀굿에 해당한다.

(4) 수륙재

수중고혼을 위한 재로서 무속의 용왕굿에 비교된다. 그러나 수륙재의 원래 의미는 반드시 수중고1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규모가 큰 수륙재는 처음에 절에서 영산재를 행하고, 나중에 강이나 바다로 나가서 수륙재를 행한다. 전자의 영산재만 하더라도 3일간이나 걸릴 만큼 아주 규모가 큰 재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영산재를 생략하고 처음부터 강이나 바다에 나가서 배를 띄워 놓고 수륙재만을 거행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수륙재의 절차는 서찬편 · 상단(上壇) · 사자단(使者壇) · 오로단(五路壇) · 상단(上壇) · 중단(中壇) · 하단(下壇) · 회향단의 순으로 되어 있는데, 각 단마다 수십 개씩의 소리로 되어 있다. 방생재(放生齋)는 하단의 끝부분에 속하는 절차로 강이나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하는 규모가 큰 방생재를 행하고 나면 회향단을 생략하고 끝마친다.

(5) 영산재

가장 규모가 큰 재로 3일이나 걸리는데, 국가의 안녕과 군인들의 무운장구(武運長久) 또는 큰 단체를 위해서, 또는 죽은 자를 위해서도 행한다. 범패승들은 처음에 상주권공을 배우고 각배(各拜)를 배운 다음 마지막으로 이 영산재를 배우게 된다.

예로부터 ‘1일 권공 3일 영산’이라 하여 영산재는 올리는 데 3일이나 걸리는 대규모의 재인만큼 그 절차도 상당히 복잡하다. 1968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봉원사에서 행한 영산재에서는 142곡이나 불렸다.

범패에는 그 음악적 형식으로 보아 안차비들이 부르는 안차비소리와 겉차비(또는 바깥차비)들이 부르는 홋소리 · 짓소리, 그리고 축원을 하는 화청(和淸) 등 네 가지가 있다.

안차비소리란 재를 올리는 절 안의 유식한 병법(秉法) 또는 법주(法主)가 <유치> · <청사> 같은 축원문을 요령(搖鈴)을 흔들며 낭송하는 것으로 흔히 염불이라고도 한다. 한편, 바깥차비란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승려로 주로 다른 절에 초청을 받고 가서 소리하는데, 범패는 주로 이 겉차비들의 노래이다.

(1) 안차비소리(염불)

안차비소리의 곡목은 주로 한문으로 된 산문이며, 그 내용은 재주(齋主)를 축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착어성 着語聲> · <창혼 唱魂> · <유치성 由致聲> · <청문성 請文聲> · <편계성 偏界聲> · <소성 疎聲> · <축원성 祝願聲> · <가영성 歌詠聲> · <고아게성 故我偈聲> · <헌좌게성 獻座偈聲> · <종성 鐘聲> · <탄백성 歎白聲> 등이 있다.

홋소리나 짓소리가 노래인 데 비하여 안차비소리는 촘촘히 글을 읽어 나가는 소리이다([악보 1]).

(2) 홋소리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재에 사용하는 음악은 대부분 안차비소리와 홋소리로 되어 있고, 짓소리란 겨우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홋소리의 사설은 대개 7언4구 또는 5언4구의 한문으로 된 정형시로 되어 있다. 그 4구 가운데서 제1·2구를 안짝이라고 부르고, 제3·4구를 밧짝이라고 한다.

예컨대, <고향게 告香偈>의 사설 ‘향연편복삼천계 정혜능개팔만문 유원삼보대자비 문차신향임법회(香烟遍覆三千界 定慧能開八萬門 唯願三寶大慈悲 聞此信香臨法會)’를 노래할 때 “안짝은 쓸고 밧짝만 지으라.”고 유나(維那:범패 감독자)가 인도(引導:범패를 부르는 이들 중 리더 격)에게 지시하면, 이것은 제1·2구는 간단히 빨리 부르고 제3·4구는 제대로 길게 노래하라는 뜻이 된다.

이때, ‘쓸다’라는 말은([악보 2])와 같은 선율에 붙여서 촘촘히 읽어 나간다는 뜻이니, 곧 안차비소리의 형식으로 엮는다는 뜻이 된다.

홋소리를 배우는 순서는 대개 다음과 같다. <할향> · <합장게> · <개계> · <쇄수게, 관음찬> · <복청게> · <사방찬> · <도량게> · <참회게> · <헌좌게> · <가영> · <등게>……. 홋소리의 음악형식을 <할향>의 예로 살펴보면([악보 3]), 음계(音階)는 C#, F#, A의 주요 3음과 E와 B의 부차적 음들이 있어 완전4도(C#-F#) 위에 단3도(F#-A)를 쌓아올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음계는 경상도 · 강원도 지방의 민요선법과 같은 꼴이다.

범패는 홋소리나 짓소리를 막론하고 ‘성(聲)’ 또는 ‘가락(melodic pattern)’이 여럿 모여서 하나의 곡을 이룬다.

<할향>의 제1구 ‘봉헌일편향’은 모두 5개의 가락으로 이루어진다. [악보 3]을 보면, 첫번째 가락인 ‘봉헌’(악보 3의 ○)은 처음의 a₁a₂a₃가 특색이요, 두번째 가락(악보 3의 ○)은 F에서 F#으로의 반음 진행이 특색이다. 세번째 가락(악보 3의 ○)은 b´₃b´´₁b´´₂b´´₃처럼 차차 자지러드는 소리(또는 잦는 소리, 추스르는 소리, 잦추르는 소리라고도 함), 네번째 가락(악보 3의 ○)은 ‘새 쫓는 소리’와 c₁c₂c₃c´₁c´₂c´₃c´´₁c´´₂c´´₃로 자지러드는 소리, 다섯번째 가락(악보 3의 ○)은 d₁d₂ 등이 특색이다.

제2구인 ‘덕용난사의’의 ‘덕용’은 제1구의 ‘봉헌’과 같은 가락이고, ‘난사’(악보 3의 ○)는 e₁e₂e₃e´₁e´₂e´₃로 자지러드는 소리가 특색이며, 끝부분은 제1구의 다섯번째 가락과 같다. 제3구는 제1구와 같고 제4구는 제2구와 같다.

따라서 <할향>은 AA′AA′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안짝과 밧짝이 꼭 같다. 홋소리의 다른 곡들도 대개 <할향>처럼 AA′AA′, 또는 ABAB로 안짝과 밧짝이 같게 마련이다.

(3) 짓소리

짓소리는 홋소리를 모두 배운 범패승이 배우는 소리로 대개 한문의 산문, 또는 범어의 사설로 되어 있다. 또한 반드시 합창으로 불리지만 독창으로 부르는 허덜품이라는 것이 있어 일종의 전주(前奏) 또는 간주(間奏) 구실을 한다. 짓소리는 홋소리에 비하여 한 곡의 연주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30∼40분 이상이 소요된다.

따라서 요즘처럼 의식이 간략화되면 긴 짓소리는 자연히 불리지 않게 마련이어서 예전에는 72가지나 되던 것이 오늘날에는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고, 몇몇 범패승이 겨우 <인성 人聲> · <거경산 擧炅山> · <관욕게 灌浴偈> · <목욕진언 沐浴眞言> · <단정례 單頂禮> · <보례 普禮> · <식령산 食靈山> · <두갑 頭匣> · <오관게 五觀偈> · <영산지심 靈山至心> · <특사가지 特賜加持> · <거불 擧佛> · <삼남태 三南駄>등 13곡을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짓소리를 적어 놓은 책으로 ≪동음집(同音集)≫이 있는데, 이것은 범패를 배우는 이의 기억을 돕기 위한 것이다. 짓소리의 사설을 쓰고, 그 옆이나 밑에 작은 글자로 이 가락은 다른 곡의 어느 사설의 글자를 노래하는 가락과 같다고 기록한 것이다.

현재 전하는 동음집은 ≪박운월소장동음집 朴雲月所藏同音集≫ · ≪옥천유교동음집 玉泉遺敎同音集≫(박운월 소장) · ≪김운공소장동음집 金耘空所藏同音集≫ · ≪장벽응소장동음집 張碧應所藏同音集≫ 등 4종이다.

(4) 화청(和請)

불교 포교의 한 방편으로 대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 사설을 민속적 음악에다 붙여 그 교리를 쉽게 이해시키고 신봉하게 하는 음악이다. 흔히 재의 끝에 부르는데, 태징과 북을 반주로 엇모리장단에 맞추어 경서도창식(京西道昌式)으로 부른다([악보 4]).

범패는 불교의식에 수반되는 것이어서 사설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 심산유곡에서 들려 오는 범종의 소리 같아서 파도를 그리는 듯 들리고 유현청화(幽玄淸和)하여 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으며, 장인굴곡(長引屈曲)하여 유장하고 심오한 맛이 있다.

오늘날에는 모든 의식을 간소화하는 경향이 짙어 며칠씩 걸리던 재가 단 몇십 분으로 단축되어 가니 범패는 점점 없어져 가고, 재를 집행할 때 안차비소리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973년 범패가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1987년 영산재(靈山齋)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예능 보유자로는 박희덕(朴喜德:범패), 장태남(張泰男:범패). 이재호(李在浩:작법무) 등이 인정되었다. →범무

참고문헌

『석문의범』(안진호 편, 법륜사, 1961)
『영산예수재범음집(靈山豫修齋梵音集)』(박송암, 수사본)
『중례문수륙재(中禮文水陸齋)』(박송암, 수사본)
「범패」(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속악체계정립자료집』 4, 1980)
『불교음악연구』(한만영,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1)
「신라의 범패」(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한국범패의 연혁」(이혜구, 『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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