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 ()

신유 글씨
신유 글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군택(君澤)
죽당(竹堂), 이옹(泥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0년(광해군 2)
사망 연도
1665년(현종 6)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동부승지|우승지|형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이옹(泥翁). 첨지중추부사 신말주(申末舟)의 7대손이며, 신언식(申彦湜)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염(申淰)이고, 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며, 어머니는 김영국(金英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지평(司憲府持平)·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에 이조좌랑이 되고, 이듬해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그 뒤 집의(執義)·동부승지·우승지 등을 거쳐, 1650년(효종 1)에는 도승지가 되었다. 이때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대사간을 거쳐 1652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7년 대사간으로 국왕을 능멸하였다 하여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천안으로 옮겨졌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1661년(현종 2)에 형조참판이 되었고, 이어 호조·예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또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글씨에 능하였다.

저서로 『죽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여암유고(旅菴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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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신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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