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는 황보씨(皇甫氏). 본관은 황주(黃州). 아버지는 태위(太尉)·삼중대광(三重大匡)이며 충의공(忠義公)에 추증된 황보제공(皇甫悌恭)이다. 자녀는 태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와 대종(戴宗) 욱(旭)이 있다. 대목왕후는 태조와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 유씨(劉氏) 사이에서 태어난 광종(光宗)과 혼인하여 경종(景宗)을 낳았다. 대종 욱은 태조와 정덕왕후(貞德王后) 유씨(柳氏) 사이에서 태어난 선의왕후(宣義王后)와 혼인하여 경종의 왕비가 된 헌애왕태후(獻哀王太后) 황보씨와 헌정왕후(獻貞王后) 황보씨, 그리고 성종(成宗) 등을 낳았다.
언제 태조의 왕비가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에 책봉되었다.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성종이 올린 시호(諡號)이다. 명복궁대부인에 책봉되기 전에는 황주원부인(黃州院夫人)으로 불렸다는 주장도 있다.
비의 고향 황주는 신라의 패강진(浿江鎭) 지역에 속하며 국경 수비의 육군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태조는 이처럼 요충지에 속한 호족(豪族)의 딸을 왕비로 맞이함으로써 자신의 지원 세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태조 사후의 왕실 간 세력 다툼에서 황보씨계의 왕자·왕녀는 신명왕후(神明王后) 유씨계(劉氏系)와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왕실내의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신정왕태후는 대종 욱과 선의왕후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친손자인 성종을 어려서부터 직접 키웠다. 성종의 누이인 헌애왕태후와 헌정왕후를 대목왕후 소생인 경종과 혼인시켜서 왕비로 삼았을 때에도 그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경종이 헌애왕태후에게서 낳은 어린 목종(穆宗)을 대신해서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성종이 다시 목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도 선정왕태후를 중심으로 한 혈연적 유대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헌정왕후 황보씨는 경종의 사후에 태조와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난 안종(安宗) 욱(郁)과 사통하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현종(顯宗)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정왕태후는 경종과 성종뿐만 아니라 목종과 현종의 왕위계승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983년(성종 2) 성종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크게 애도하며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로 추봉(追封)하고 수릉(壽陵)에 장사 지냈다. 1002년(목종 5)에 정헌(定憲), 1014년(현종 5)에 의경(懿敬), 1027년(현종 18)에 선덕(宣德), 1056년(문종 10)에 자경(慈景), 1140년(인종 18)에 유명(柔明), 1223년(고종 10)에 정평(靖平)의 시호가 거듭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