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행 ()

목차
불교
인물
고려후기 낙산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이칭
이칭
희현(希玄)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54년(고종 41)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낙산사 주지
목차
정의
고려후기 낙산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내용

속명은 희현(希玄). 고종 때의 낙산사(洛山寺) 주지로서, 1253년(고종 40) 몽고의 침입이 있자 낙산사의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正趣菩薩像), 보주(寶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양주성(襄州城: 현재의 양양)으로 옮겼다.

이듬해 성이 함락위기에 놓이자 보주와 수정염주를 은합(銀盒)에 넣어 도피하려 하였으나, 사노(寺奴) 걸승(乞升)이 빼앗아 땅에 묻으면서 맹세하기를, “내가 죽으면 두 보주는 다시 인간세상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고, 내가 죽지 않으면 두 보주를 나라에 바치겠노라.”고 하였다.

1254년 10월 22일 양주성이 함락되어 아행은 죽었으나 걸승은 죽음을 면하여 적병이 물러간 뒤 두 보주를 파내어 명주도감창사(溟州道監倉使)에게 바쳤다. 그 뒤 이 보주는 각유(覺猷)의 청에 의하여 어부(御府)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韓國)의 사찰(寺刹) 14-낙산사(洛山寺)-』(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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