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자유(子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여 경사(經史)에 밝고 문명이 높았다. 명경거유(名卿巨儒)들이 많이 살고 있는 장의동(藏義洞)에 거주하면서 그들과 교유하였다.
1682년(숙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위계는 통정대부를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1689년의 기사환국 때에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출당하자 부당성을 역설하였다.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성품이 청렴결백하여 재물을 탐하지 않고, 다만 서책을 벗삼아 생활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벼슬은 의빈도사(義賓都事)를 거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