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後金)이 쳐들어오자 대신들의 천거로, 압록강변의 요충인 벽동(碧潼) 수비의 책임을 맡고 현지에 나가 고군분투하다가 정세가 불리해지자 자결하였다. 1796년(정조 20)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장(襄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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