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 청주 출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그 뒤 감찰에 올랐으나 시사(時事)의 급변으로 사직하고, 권상하(權尙夏)를 따라 학문을 닦았다. 그뒤 다시 기용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 숙종이 구언교(求言敎: 국정에 대하여 신하나 사림들의 직언을 구하는 교시)를 내리자 이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당시 화를 입은 자들의 용서를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당한 끝에 옥사하였다.
다음해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충신문이 세워지고 그뒤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의민(毅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