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영조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영조(靈照)

    불교인물

     고려전기 용화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영조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전기 용화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호는 제운(齊雲) 또는 진각(眞覺). 고려인으로서 중국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당나라 말에 저장성 항저우(杭州) 지방으로 가서 선법(禪法)을 구하다가 설봉(雪峰)을 찾아 선법의 대의를 묻고 수도하였으며, 설봉의 밑에서 오도(悟道)하여 법을 전해받았다.
    그는 청원행사(淸原行思)의 7세손이 되었다. 언제나 누더기 한 벌을 걸치고 대중을 위한 여러 가지 일을 사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포납(照布衲)이라고 불렀다.
    설봉의 법맥을 이은 뒤 경청원(鏡淸院)에 머물다가 후저우태수(湖州太守) 전공(錢公)이 보자원(報慈院)을 창건하여 그를 모셨으며, 다시 전공은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여 주지직을 맡겼다. 그는 이 절에서 선법을 전하다가 입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월(吳越)의 왕은 그를 내도량(內道場)으로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청하였다.
    탑은 대자산(大慈山)에 세워졌다. 그의 법문 중 일부는 화두(話頭)를 집성, 편집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 나라의 고승들로서는 극히 찾아보기 힘든 예로서,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날 영조는 저녁 반달을 가리키면서 부상좌(溥上佐)에게 물었다. “저 한 조각 달이 어디로 가는가.” 부상좌가 “망상을 부리지 말라.”고 하자, 그는 “한 조각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때 한 승려가 “영단(靈丹) 하나로 철에 점을 찍으면 금을 이루듯이, 진리 한 마디로 범부에게 점찍어서 성인을 이룬다고 하니, 스님의 일점(一點)을 청합니다.” 하였다. 이에 “그대는 내가 금에 점찍어 철을 이루는 것을 알겠는가?” 하고 되물었다.
    그 승려가 그러한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자, 영조는 “일구(一句) 아래에서 깨닫지 못하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이종익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