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 출신으로 관등은 파진찬(波珍飡)에 이르렀다. 그의 딸은 효성왕의 후비로 들어가 왕의 총애를 받다가 효성왕비인 김순원(金順元)의 딸 혜명(惠明)이 질투하여 왕비의 족당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영종은 모반을 일으켰다가 740년에 복주(伏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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