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부(敬夫), 호는 지족암(知足庵)·국재(菊齋). 오신중(吳愼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자치(吳自治)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오세훈(吳世勳)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신말평(申末平)의 딸이다. 유우(柳藕)의 문인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3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의령현감으로 나갔다가, 예조좌랑을 거쳐 형조정랑이 되었다. 그 뒤 장령(掌令)·집의(執義)·교리(校理)·부응교(副應敎)·내섬시첨정(內贍寺僉正)을 거쳐, 남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550년(명종 5)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고, 곧 담양부사·광주목사를 거쳐 호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559년에 예조판서가 되고 뒤에 이조·병조·호조의 판서를 거쳐 지경연사가 되었다.
1564년 좌찬성에 올라 왕으로부터 궤장(几杖)을 내려받고, 그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지춘추관사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우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