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백(善伯), 호는 성탄(聲灘) 혹은 미천(薇川). 유균(柳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영성(柳永成)이다. 아버지는 유집(柳楫)이며, 어머니는 이종운(李從運)의 딸이다.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를 거쳐,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부정자를 시작으로 수찬(修撰)·교리(校理)·지평(持平)·사서·헌납(獻納) 등을 두루 역임하고, 1647년 이조정랑이 되었으며, 암행어사로도 활약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사간·승지·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다. 현종대에는 동지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대사헌에 올랐다.
관직에 있을 때에 항상 청렴하기로 이름났으며, 비록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검소와 청렴으로 일관하여 선비들이 매우 존숭하였다 한다. 숙종대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