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공조좌랑, 병조정랑,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형(士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7년(광해군 9)
사망 연도
1664년(현종 5)
본관
칠원(漆原,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
주요 관직
공조좌랑|병조정랑|장령
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좌랑, 병조정랑,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사형(士衡). 윤성(尹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자신(尹自莘)이다. 아버지는 군수 윤유길(尹有吉)이며, 어머니는 풍산임씨(豊山任氏)로 선교랑 임선(任瑄)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53년(효종 4) 금오랑(金吾郎)을 거쳐 1657년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이 되었다. 1660년(현종 1) 공조좌랑이 되고, 그 해 함열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함열현에서 시행된 과거에서 고관(考官)에 대한 불만으로 응시자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금란관(禁亂官)으로 주선하여 수습하였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아 한때 파직되었다. 한때 파직되었다. 1662년 공조에 서용, 곧 호조로 옮겨졌다.

그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병조정랑을 거쳐 사간·정언·지평이 되고, 강관(講官)으로 치도(治道)를 강론하였다. 1664년 장령으로 있다가 사임하고, 그 해 경기도사로 재직 중에 죽었다. 강직, 청렴하고 사부(辭賦)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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