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명지(明之). 이세범(李世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국주(李國柱)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상민(李尙閔)이며, 어머니는 판관 이학수(李鶴壽)의 딸이다.
7세 때 독서를 하였고, 1610년(광해군 2) 세마(洗馬)가 되었다. 1612년에 전옥주부(典獄主簿)가 되고, 곧 전중도감(殿中都監)을 거쳐 낭청이 되었다. 161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교가 되고, 이어서 전적을 거쳐 형조정랑이 되었다가, 직강으로 옮겼다.
1623년(인조 1) 흥해군수로 나갔다가, 그곳 이민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 이듬해에 공조좌랑이 되었고, 1625년에 관서에 가서 북쪽 여진의 사신인 모도사(毛都司)를 접반(接伴)하였다. 형조정랑을 거쳐서 고양군수가 되고, 1627년에 공조의 낭청과 첨정(僉正)을 거쳐 통례원통례가 되었다.
이듬해 정랑이 되었다가 군기시정(軍器寺正)으로 승진하고 이어서 군자감정(軍資監正)이 되었다. 그 해 고원군수로 나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임지에서 죽었다. 도승지에 증직되었다. 사람됨이 폭넓고 천진하였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