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신(士愼). 현령 이영(李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명신(李命新)이다. 아버지는 이원(李瑗)이고, 어머니는 서씨(徐氏)이다.
1770년(영조 4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설서(說書)가 되고 2년 후 부수찬이 되었다. 부수찬 당시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의 일로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1778년(정조 2)에 사간이 되어 야대(夜對: 야간에 임금과의 독대)하여 육선공(陸宣公)의 주의(奏議)와 인재등용법에 대하여 논하였다. 1780년(정조 4)에 금위영문종사관(禁衛營門從事官)으로 종군하지 않았다고 하여 관을 벗기우고, 결박을 당한 일이 있어 교졸과 대장이 추고를 당한 일이 있다.
1783년(정조 7)에 의주부윤이 되었다가 대사간이 되었다. 1785년(정조 9)에는 예방승지로 가선대부가 되었다. 이어 대사헌이 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원춘도관찰사(原春道觀察使: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관리의 치적을 잘못 평가하였다고 해서 다시 파직당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대사헌으로 다시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