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육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정언, 사간,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치화(致和)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5년(숙종 4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정언|사간|승지
관련 사건
권소의 투서사건
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사간,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치화(致和). 이도(李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징(李壽徵)이다. 아버지는 이환(李渙)이며, 어머니는 정수진(鄭洙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6년(영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2년(영조 28) 정언이었을 때, 대신들을 투비(投畀: 임금의 명으로 일정한 장소에 유배시키던 일)하였다 하여 사직하였다.

1755년(영조 31) 권소(權邵)의 투서사건으로 인하여 해남현(海南縣)에 정배되었다. 1757년(영조 33) 장령이 되었으며, 1764년(영조 40)에는 사치를 금할 것을 상소했으며, 이후 정언·사간·승지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손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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