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군수를 지내다가 정부가 개화정책을 표방하면서 일본과 가까이하자, 이를 맹렬히 반대하여 홍재학(洪在鶴)·김평묵(金平默) 등의 유생들과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다.
1881년(고종 18) 조정을 비방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이듬해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자 풀려나왔다가 대원군이 청군의 개입으로 실각한 뒤 대원군과 같은 계열이라는 이유로 사형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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