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으로 정3품 절충(折衝)을 지냈다. 1759년(영조 35)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의궤(嘉禮儀軌)를 김응환(金應煥)·신한평(申漢平) 등과 함께 제작하였으며, 1765년에는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수행화원으로 선발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기록화 등에 능했으며, 현존하는 대표적인 유작으로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이 있다. 이 도첩은 영조의 어명으로 1761년(영조 37)에 그린 것으로 총 16폭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