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성 ()

회화
인물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을 역임한 화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도화서 화원
목차
정의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을 역임한 화가.
생애 및 활동사항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으로 정3품 절충(折衝)을 지냈다. 1759년(영조 35)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의궤(嘉禮儀軌)를 김응환(金應煥)·신한평(申漢平) 등과 함께 제작하였으며, 1765년에는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수행화원으로 선발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기록화 등에 능했으며, 현존하는 대표적인 유작으로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이 있다. 이 도첩은 영조의 어명으로 1761년(영조 37)에 그린 것으로 총 16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담헌연행잡지(湛軒燕行雜誌)』
『중국사행을 다녀온 화가들』(국립중앙박물관, 2011)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조선시대궁중의궤에 나타난 반차도(班次圖)」(유송옥, 『한국의 미 19: 풍속화』, 중앙일보사, 1985)
집필자
홍선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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