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는 모래시계 모양의 북통 양면에 가죽을 대어 만든 타악기이다. 넓은 의미의 북에 속한다.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로는 막명(膜鳴)악기에 속한다. 10세기 전 서역 문물과 함께 수용된 이래 궁중 및 민간의 무속 의례 및 농악을 포함한 민간 연희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한자로는 장고로 표기하고, 장구로 발음하며 제주 무속에서는 장귀라고 부른다. 장구를 연주할 때는 양쪽의 북면을 채 또는 손바닥으로 쳐서 소리를 낸다.
모래시계형 공명통을 가진 타악기 연원은 고대 인도로 알려져 있으며, 서역 문물의 이동과 함께 동북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0세기 이전, 장구의 고형은 북의 양면을 손바닥으로 치는 형태로 요고, 또는 세요고라고 불리며 중국 · 한국 · 일본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와 명칭으로 분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그 여러 유형 중 장구는 본래의 요고보다 북통이 넓고 길게 확장된 형태이며, 연주할 때는 손바닥과 채를 이용하는 등 인근 국가에 전승되고 있는 요고류 악기와 차별점이 있다.
장구의 유입과 활용에 관해서는 11세기 이후의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주악상 및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요고 등은 요고형 악기의 수용 시기를 그 이전으로 소급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장구는 고려 이후 국가 의례 및 연향의 향악과 당악, 지식 계층의 풍류에 두루 사용되었다. 민간에서의 사용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나, 조선후기 및 일제강점기의 도상 자료에서 무속 및 민속에서의 쓰임이 확인된다.
장구는 크게 울림통과 울림통 양면을 막는 가죽 북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부적으로 모래시계형으로 깎은 울림통의 한 중간인 조롱목, 북면의 가죽을 둥그렇게 고정시키는 데 필요한 가죽테, 북면을 울림통에 연결하는 조임줄, 조임줄을 양면에 걸어 고정시키는 고리, 조임줄의 수축을 조절하는 조이개로 구성된다. 조롱목은 세요(細腰)라고도 하며, 가죽테는 위철(圍鐵), 조임줄은 축승, 숙바, 숫바, 숱바, 고리는 고철(鉤鐵), 걸고리, 가막쇠, 조이개는 축수, 부전, 굴레, 죔쇠라고도 부른다.
북면은 장구 울림통보다 넓게 재단하여 붙이기 때문에 울림통에 면한 부분과 울림통 바깥 부분으로 구분된다. 이때 울림통에 닿는 면을 ‘복판’, 바깥쪽 부분을 ‘변죽’이라고 한다. 장구의 양쪽 북면에는 두께가 약간 다른 가죽을 씌워 음색의 차이를 낸다. 보통 오른쭉 북면은 채로 치고, 왼쪽 북면은 손바닥으로 치는 관행 때문에, 채로 치는 면을 ‘채편’, 손바닥으로 치는 면을 ‘북편’으로 불러 왔다. 이밖에도 민간에서는 왼쪽 북면을 궁글채로 친다는 뜻에서 ‘궁편’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장구의 세부 구조와 명칭은 『악학궤범』에 기준을 둔 것이기는 하나, 사용 범위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이칭이 생겨났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펴낸 『왕실악무도감』에서는 『악학궤범』의 도설 내용과 현재의 명칭을 이용해 도면과 각 부분 명칭을 정리한 바 있다.
장구의 제작은 통 만들기, 가죽 다루기, 조립하기 순서로 진행된다. 현재는 주로 목재로 통을 만들지만, 질그릇이나 도자기처럼 토제, 도제로 만들기도 한다. 『악학궤범』에 장구통의 재료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실제로 고려 및 조선시대 장구 관련 유물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목재통의 경우, 오동나무가 주 재료로 사용된다. 통을 만들 때는 통나무를 이용해 장구통 전체를 깎고 다듬는 경우도 있고, 조롱목 양쪽을 따로 만들어 붙여 쓰는 경우도 있다.
장구 북면은 두 종류의 가죽을 사용한다. 『악학궤범』 장구편에서는 큰 쪽 북면에는 ‘백생마피(白生馬皮)’를, 작은 북면에는 생마피를 쓴다고 하였지만, 제작 현장에서는 말가죽, 소가죽, 개가죽, 노루가죽 등을 형편에 따라 사용하되, 북편에는 더 두꺼운 가죽을, 채편에는 더 얇은 가죽을 써서 차이를 두었다. 북통과 가죽이 마련되면, 북면 가죽을 북통에 씌워 연결한다. 북면 가죽은 북통보다 크고 넓게 재단하고, 가장자리에 원형의 테(위철)를 끼워 가죽 실로 꿰매 둔다. 북통과 북면이 완성되면 무명끈을 꼬아 만든 조임줄을 8개의 걸쇠를 이용해 걸고, 사이에 조이개(축수)를 끼워 넣어 적당히 조이고 울림을 조절한다.
한편, 장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울림통에 채색과 문양을 넣기도 하고, 조임줄에 염색을 하거나 걸쇠에 조각을 넣는 등 멋을 돋우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많은 유물 및 도설, 도상 자료에서 확인되며, 실물 자료로는 미국 피바디 에섹스박물관에 소장된 조선후기 궁중 장구의 예를 들 수 있다. 민간에서 사용된 장구에도 채색과 문양이 있는 경우, 북통 채색만 한 경우,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마무리한 경우 등이 보인다.
장구를 치는 채는 두 종류이다. 한 개의 채만 이용하는 궁중 및 풍류용 장구의 채는 ‘채(鞭)’라 하고, 두 개의 채를 이용하는 민간의 장구는 ‘열채’와 ‘궁글채(궁채, 궁글이채)’라고 한다. 채와 열채는 대나무를 깎아 만들고, 궁글채는 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다음, 나무 막대의 끝부분에 둥근 목구(木球)를 박아 완성한다.
장구의 규격은 『악학궤범』에 표기된 울림통 길이 54㎝, 너비 28㎝이다. 궁중에서는 대체로 이를 기준으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나, 조선후기에 제작된 장구의 규격은 이보다 크다. 민간 전승 장구의 규격은 용도와 사용자의 신체 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변용되었다. 관현편성의 합주에는 더 큰 장구가, 장시간 뛰고 춤을 추며 연주하는 놀이나 춤에 사용되는 장구는 조금 작고 가벼운 것이 선호되었다.
한편, 민간의 무속에 사용된 장구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동해안 무속에 사용되는 장구는 북통 크기가 농악용 장구보다 작고, 양쪽 북면 중 채편이 넓다. 채편의 변죽 부분이 안쪽으로 숙인 형태이며, 줄을 걸어 조일 때 가죽이 아닌 실을 이용하고, 조이는 방향도 북편 쪽으로 조인다. 제주 무속에서는 장구를 ‘장귀’라고 한다. 장귀는 북면 지름 30㎝, 북통 길이 45㎝ 정도인데, 북편과 채편의 통이 두 쪽으로 분리되어 있어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만들어 썼다.
장구는 궁중 및 민간의 무속 의례, 농악 및 민간의 연희 종목에서 한국 음악의 리듬과 속도를 주도하는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노래의 반주에도 사용되었다. 특히 농악에서는 장구의 주법을 특화한 장구놀이(설장구놀이)와 장구춤(설장구춤) 등이 발달되었다.
장구는 채와 손바닥을 이용해 양면의 복판과 채편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다양한 소리를 낸다. 조선시대에는 장구 연주를 위한 기보 체계가 고안되었다. 『악학궤범』에는 장구를 칠 때 채와 손을 이용해 연주하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양손을 동시에 치는 것은 쌍(雙), 오른손 채로 치는 것은 편(鞭), 왼손으로 북편을 치는 것은 고(鼓), 채로 채편을 굴리는 것은 요(謠)이다. 아울러 『금합자보』를 비롯한 여러 고악보에는 장구의 주법을 ‘덩’, ‘더’, ‘쿵’, ‘더러러’와 같은 구음 표기들이 장구 주법 부호화 함께 기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