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 어려서 한학을 하였고, 1902년 삭주교회 설립자인 백유계(白留溪)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1903년 감리교의 노블(Noble, W. A.)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1905년에 삭주교회의 집사가 되었으며, 매서인(賣書人)이 되어 전도활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벽동읍교회에 조사로 부임하였다.
1913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에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914년 장로교 평북노회에서 만주지방 전도목사로 만주로 건너가 14년 동안 전도활동을 하다가 1926년에 귀국하였다.
그 해에 평안남도강동교회(江東敎會)에 부임하였고, 다음해부터 산정현교회의 전도목사가 되어 평양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가 개척전도·노방전도를 하여 세운 교회의 수는 무려 74개나 되었다. 그가 평양에 머물러 거리의 전도자로 일하게 된 데는 길선주(吉善胄)목사의 주선이 컸다.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1939년 5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신문을 당할 때에도 ‘예수천당’을 외쳤으며 감방 안에서도 전도를 계속하였다.
1944년 3월 1일을 기하여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였고 4월 15일 병보석으로 풀려난 얼마 뒤 사망하였다. 광복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