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위영(禁衛營)
동시에 정초군과 훈련별대를 합쳐 1영(營) · 5부(部) · 20사(司) · 105초(哨)로 편제하고, 다시 이들을 10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번상(番上)[^2]하게 하되, 그 운용을 위해 [보(保)를 설정해서 ‘금위영’이라 하였다. 훈련도감 · 어영청과 더불어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의 핵심 군영의 하나였던 금위영은, 그 임무가 중요해 병조판서가 그 대장직을 겸직했고, 그 아래 금군인 기 · 보병과 짝을 이루는 체제를 갖추었다. 뒤에 금위영은 그 수가 증가해 5부 · 25사 · 125초에 평안도 아병(牙兵)으로 편제된 별좌우사(別左右司) 10초, 별중초(別中哨) 1초 등이 추가되어 135초로 편제되었다. 군사의 주축은 평안 · 함경도를 제외한 6도 향군이었다. 1704년 군제변통(軍制變通) 때 어영청과 규모를 같이하기 위해 1영 · 5부 · 25사 · 125초의 향군 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