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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漢城)

    인문지리지명

     황해도 재령지역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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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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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한홀(漢忽), 식성(息城)
    분야
    인문지리
    유형
    지명
    성격
    고지명
    소재지
    황해도 재령군
    시대
    고대-삼국-고구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황해도 재령지역의 옛 지명.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본래 한홀(漢忽)이었는데 뒤에 한성(또는 息城)으로 고쳤다. 신라 경덕왕 때중반군(重盤郡)으로, 고려 태조 때안주(安州)로 고치고 고종 때재령으로 고쳤다. 고구려 때 평양성ㆍ국내성(國內城)과 더불어 3경(京)의 하나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이곳은 넓은 재령평야가 있어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으며, 남으로 멸악산맥과 접하고 있어 고구려 초기에는 백제와 국경을 접하는 곳이었다. 고구려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뒤 원래의 수도였던 국내성과 남쪽의 한성을 2경으로 삼아서 평양과 더불어 정치적ㆍ군사적 요지로서 3경제를 실시하였다.
    지형상으로 재령강에 연하여 발달한 도로를 따라 북으로 오르면 바로 평양성에 이르게 된다. 통일신라 때에는 이 지역이 대동강을 경계로 하는 북방의 국경지대로 군사적인 요새였다.
    경덕왕 때에는 오곡(五谷)주 01)서암(栖巖)주 02)한성장색(獐塞)주 03)지성(池城)주 04)덕곡(德谷)주 05)의 6개 성을 쌓아 이곳에 태수(太守)를 두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거란병이 여러 번 침입하였고, 몽고병이 이곳을 거쳐 남쪽으로 쳐내려왔다.
    한성 남쪽의 장수산성(長壽山城)과 철현산성(鐵峴山城)에는 조선 말기까지 진(鎭)이 설치되어 군사가 주둔하였다. 한성은 대성(大城) 또는 왕성(王城)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지금의 서흥
    주02
    지금의 봉산
    주03
    지금의 수안
    주04
    지금의 해주
    주05
    지금의 곡산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원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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