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榮州市)
고려 후기에 안향(安珦)·안축(安軸)·정운경(鄭云敬)·정도전(鄭道傳) 등과 같은 사대부들이 배출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 등급의 조정에 따라 영주와 기주는 영천군·기천현이 되었고 순흥부는 도호부로 되었으며, 기천현은 1450년(세종 32)은풍현으로 합해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영천군이 377호 5,902인, 순흥부가 284호 3,599인, 풍기군이 160호 1,511인이었다고 한다. 토지는 대부분 척박했고, 풍속은 근검해 누에고치의 재배와 같은 생업에 힘썼다고 한다. 순흥부는 1457년(세조 3) 금성대군(錦城大君)과 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 기도 때문에 부가 폐지되고 영역이 영천·풍기·봉화 등에 분속되었다. 그 뒤 고을사람들이 계속된 상소에 따라 1683년(숙종 9)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