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6책. 목판본. 1949년에 간행되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263수, 권3∼7에 서(書) 149편, 권8에 통문(通文) 6편, 권9에 기 9편, 서(序) 4편, 논 8편, 찬(讚) 2편, 상량문 1편, 잡저 10편, 권10에 제문 15편, 행장 2편, 권11에 묘문 27편, 권12는 부록으로 행장 1편, 유사 6편, 묘갈명 1편, 기 3편, 제문 35편, 만장 41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애착과 찬탄이 광범위하게 서술되어 있다. 서(書)의 별지에는 주로 스승인 송병선(宋秉璿)을 비롯하여 지우들에게 대부분 예에 관해 논술한 것이 많다. 「국복설시제동지(國服說示諸同志)」는 고종의 국상을 당하여 상례에 대한 의론이 분분하자, 고전을 인용하여 3년 상복을 입을 것을 주장한 것이다.
「궁산문답(窮山問答)」은 의리에 대하여 문답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글에서 그는 광해군이 폐모한 사실과 숙종이 민비를 폐한 예를 들어 폐모는 있을 수 없는 불륜이지만, 정당한 사유에 의한 폐비는 의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숙종의 폐비는 부당한 처사이었기 때문에, 박태보(朴泰輔)가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충언한 것은 충신의 처사라고 찬양하였다.
그밖에 정전제도를 설명한 「정전설(井田說)」과 어버이를 잘 섬기겠다고 다짐한 「사친잠(事親箴)」,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여 인물평을 한 「곽외론(郭隈論)」·「노래론(老萊論)」·「도원결의론(桃園結義論)」·「가족제복론(加足帝腹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