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의대(簡儀臺)라고도 한다. 1432년(세종 14)에서 1434년 사이에 간의 등 천문기구를 만들었는데, 그 중 관천대(觀天臺)는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높이 31자, 너비 32자, 길이 47자의 큰 규모로 쌓았다. 모두 돌로 쌓았고 위에는 돌난간을 둘렀으며, 그 안에 간의를 설치하고 매일 밤마다 서운관원(書雲觀員) 5인이 입직하여 천문관측에 종사하였다.
부대시설로는 정확한 방향을 나타내는 정방안(正方案)을 남쪽에 두고, 태양의 방향과 고도를 측정하는 규표(圭表)를 서쪽에 두었으며, 혼의(渾儀)와 혼상(渾象)을 비치한 작은 건물도 부설되어 있어 종합적인 천문대로서 손색없는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 관천대는 그 뒤 신궁(新宮)을 짓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옮겼고, 1546년(명종 1)에는 대규모로 중수하였다. 경복궁 안의 간의대 외에도 한양 북부 광화방(廣化坊: 현재의 桂洞)에 위치하였던 서운관에도 간의대가 있었다.
경복궁의 것과 광화방의 것은 모두 임진왜란 때 타버렸는데, 그 뒤 숙종 때에는 영관상감사(領觀象監事)인 남구만(南九萬)이 옛 서운관 자리에다 관상감을 복구하였고, 그 때 간의대도 함께 복원되었다. 그밖에 임진왜란 이후 왕이 거소를 창덕궁으로 옮기자 창경궁에도 간의대가 축조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과 창경궁에 유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