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도량형의 기본 단위로 주척(周尺)이 사용되어 왔으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혼란기에 국가의 도량형 관리가 소홀하여 문란하게 되었다.
세종은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을 행함에 있어서 주척보다 더한 문화적인 황종관(黃鐘管)의 제작을 박연(朴堧) 등에게 명하여, 여기서 황종척을 얻어 이것으로 도량형개혁의 기본 단위로 삼았다.
황종척을 중심으로 한 척도 체제가 적어도 성종 때까지는 유지된 것을, ≪경국대전≫ 공전(工典)의 도량형에 대한 기술이 황종척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경국대전≫과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다른 척도들의 황종척에 대한 비율은 〈표〉와 같다.
척도 | 周尺 | 營造尺 | 造禮器尺 | 布帛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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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 ||||
경국대전 | 1.6684 | 1.11148 | 1.21239 | 0.94211 |
증보문헌비고 | 1.6666 | 1.11148 | 1.21212 | |
〈표〉 황종척에 대한 비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