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황해도, 평안도 등 북부 지방으로 주민을 이주시켜 새로운 토지를 개척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세종 대 4군 6진의 개척과 사민(徙民) 사업은 군사적인 안전과 영토 확보와 함께 미개간지의 개척을 동반하는 일이었으나, 북부 지방에 대한 개간은 세조 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457년(세조 3)에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새로운 토지 개간을 장려하기 위해 농우 공급과 면세를 포함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한편, 많은 토지를 개간한 수령을 포상하는 절목을 마련하였다.
정부는 개간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하삼도의 인구를 대규모로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사민 정책과 함께 서울의 지배층들을 북부 지방에서 개간에 참여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 간전상직제를 마련하였다. 1459년(세조 5) 당상관 이상에게는 관품에 따라 10~30결 규모를 자원에 따라 개간하도록 하는 한편, 당상관 이하에서는 10결, 15결, 20결을 개간하는 경우 각각 등급을 나누어 관품을 올려 주도록 하였다.
간전 규모에 따라 포상하는 제도가 마련됨에 따라 이후 관인층이 북부 지방 개간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466년(세조 12)에는 오히려 토지를 제대로 개간하지 않고 상을 받는 것에만 몰두한다는 비판과 함께 제도 개정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후 성종 대에 이르러 세조 대에 간전상직제가 운영되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세조 말엽에 이르러 폐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