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금릉군 개령현(開寧縣)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편찬하였다.
불분권(不分卷)주1 1책의 필사본이다. 주2으로 제본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모두 ‘개령현읍지(開寧縣邑誌)’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조정의 명령에 따라 제작된 일련의 지리지 가운데 하나로서 1891년(고종 28)에 편찬하였다.
수록 항목은 사계(四界), 건치연혁(建置沿革), 현명(縣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防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전세(田稅), 공목(公木), 대동(大同),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倉庫), 저치(儲置), 조적(糶糴),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 교량(橋樑),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인물, 제영(題詠), 비판(碑板), 비문(碑文), 책판(冊板) 순으로 구성하였다.
일반 읍지와는 다르게 본문에 지도를 수록하지 않았다. 본문 시작에는 ‘상주진관’ 소속이라고 기록하였다. 호구 항목은 갑자년의 호구임을 명시하였다. 군액 항목에는 각 부대별로 소속 인원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성지는 없다고 하였으며 관방과 진보, 능묘 역시 없다고 썼다. 누정 항목에는, 분량은 많지 않으나 각 정자와 누정에 있는 시문을 실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관찬지리지에서 제한한 문학작품 수록을 지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환적 항목에서는 신라의 기종(起宗) 등을 언급하였고, 조선의 이희급(李希伋)부터 심상황(沈相璜)까지 총 120명의 부임 연도를 기록하였다. 부임 연도로 판단하면 『개령현읍지』가 1891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물 항목에는 고려의 홍균(洪鈞)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는데, 열녀를 별도의 항목으로 빼지 않고 함께 수록하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제영 항목은 정부에서 불필요한 항목으로 취급하여 관찬지리지 제작 지침에 넣지 않았으나, 이 책에서는 작성하고 있다. 여러 유명 문인들의 시문을 다양하게 수록하였다. 비판 항목에서는 선정비들의 이름을 열거하였으며, 비문 항목은 없다고 표기하였다. 책판 항목은 관아에서 보관하는 목판을 기록한 항목으로, 『학곡집(鶴谷集)』과 『고암집(固庵集)』을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전국 관찬지리지는 정부에서 제작 지침을 도(道) 단위로 내려보내 하위 군현으로 전달하여 작성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통일된 형식을 갖추고 있는 점이 시기별 관찬지리지의 특징이다. 『개령현읍지』는 기존에 알려진 1871년(고종 8), 1895년(고종 32), 1899년(광무 3)에 제작된 전국 관찬지리지와는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읍지이다. 제본의 방식이나 지도가 없는 등 형식이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또한 1871년본 『영남읍지(嶺南邑誌)』의 「개령현읍지」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선생안에 해당하는 환적 항목만 명단을 새롭게 고쳐 쓰는 등 실질적인 수정이 없는 점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