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지도가 붙은 필사본. 표지에는 ‘慶尙南道巨濟郡邑誌(경상남도거제군읍지)’라고 되어 있다.
내용 구성은 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里)·호구(戶口)·결총(結摠)·산화전(山火田)·군액(軍額)·창고(倉庫)·관방(關防)·진보(鎭堡)·봉수(烽燧)·공해(公廨)·학교(學校)·단묘(壇廟)·능묘(陵墓)·사찰(寺刹)·누대(樓臺)·도로(道路)·교량(橋梁)·도서(島嶼)·제언(堤堰)·장시(場市)·역원(驛院)·목장(牧場)·형승(形勝)·고적(古蹟)·토산(土産)·진공(進貢)·봉름(俸廩)·환적(宦蹟)·선생안(先生案)·인물(人物)·음영(吟詠)·책판(冊板)의 차례로 되어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왜군들의 침략으로 읍의 치폐(置廢)가 잦았음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산천조에는 신천(新川)이, 1768년(영조 44)에 부사 이윤국(李潤國)이 자기의 봉전(俸錢 : 봉급) 2백민(緡)을 헐어 민전(民田)을 사들여 물길[水道]을 내고 읍기(邑基)가 있는 각산(角山)의 개[浦]로 물길을 돌림으로써 형성된 것임을 밝혀놓았다. 즉 인공하천의 좋은 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목되는 독특한 현상은 방리조에서도 볼 수 있다. 1899년 이전의 거제읍지에는 읍의 하부 행정 단위에 면이 있고, 면 아래에 부(部 : 邑內面) 혹은 운(運)이 있고, 부와 운 아래에 방(坊)들이 소속된 것으로 기록하여 일반적인 면리제(面里制)와는 다르다. 즉 읍·면·부 또는 운·방의 체제이다.
그러나 1899년의 읍지에는 일부 부와 운이 면으로 승격하고 그 아래에 방이 소속되는 체제, 즉 면·방 체제로 변하여 그 중간 단위가 없어졌음이 나타난다. 이것은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체제의 다양성, 지역적 특색을 보여준 좋은 자료이다.
고적조에는 고려 고종 때 현령 진용중(陳龍中)이 왜구와 싸워 물리친 ‘사도전(沙島戰)’을 비롯하여, 옛 우수영(右水營)에 대한 기록, 임진왜란 때의 옥포전·한산전과 임진유사(壬辰遺事) 등이 실려 있어, 거제가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