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성군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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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간성군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84년에 편찬한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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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간성군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84년에 편찬한 읍지.
내용

후사본(後寫本). 1책. 필사본.

내용 구성은 수성군지경사표(䢘城郡地境四表)·건치연혁(建置沿革)·속현(屬縣)·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강계(疆界)·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里)·해진(海津)·호구(戶口)·전부(田賦)·요역(徭役)·군액(軍額)·성지(城池)·관우(館宇)·창고(倉庫)·봉수(烽燧)·학교(學校)·단묘(壇廟)·불우(佛宇)·정사(亭榭)·도로(道路)·교량(橋梁)·도서(島嶼)·제언(堤堰)·장시(場市 : 新增)·어염(魚鹽)·역원(驛院)·목장(牧場)·형승(形勝)·고적(古蹟)·토산(土産)·진공(進貢)·약재(藥材)·공안(貢案)·봉름(俸廩)·관애(關阨)·관적선생안(官蹟先生案)·인물(人物)·문과(文科)·무과(武科)·제영(題詠)·잡기(雜記) 등으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1633년(인조 11) 장유(張維)가 쓴 옛 읍지의 서문인 <간성지서 杆城誌序>가 있다. 옛 읍지란 1631년 이식(李植)이 수령으로 부임하여 만들었던, 이 고을 최초의 읍지였다. 그 뒤 1748년(영조 24) 김광우(金光遇)가 부임하여 새로 읍지를 편찬하였고, 순조대에도 한 차례 증보 편찬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목을 새로 첨가한 것은 신증(新增)으로, 사실을 첨가하여 기록한 것은 부록(附錄)으로 기록함으로써 옛 읍지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증보하였다. 이 읍지는 1884년에 편찬된 것으로 명기되어 있으나 원본이 아니다.

용지가 한지가 아니고 1905년 이후에야 사용되는 미농전괘지(美濃全罫紙)이다. 그리고 ‘江原道(강원도)’라는 붉은 글씨가 인쇄된 규격 용지를 사용하였으므로 1884년에 편찬된 읍지를 뒤에 전사한 것으로 짐작된다.

순조대인 19세기 초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간성읍지 杆城邑誌≫를 저본으로 하여, 바로 잡을 내용이 있으면 항목 뒤에 교정(較正)을 붙여 수정하고, 첨가할 내용은 첨재(添載)라는 제목 아래에 내용을 기록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른 지역의 변화를 파악하기 쉽게 하였다. 또한, 내용이 비교적 풍부하고 상세하여 17∼19세기 후반의 간성의 여러 지역적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잡기조에 서풍 높새바람의 폐해, 겨울이 되면 눈이 많이 내려 쌓이므로 영동으로 통하는 영로들이 막혀 사람들과 상인들의 통행과 특히 공물 진상에 어려움이 많으며, 8월부터 눈이 내림을 지적한 것, 잡기조의 첨재에 1783년(정조 7)의 관동 지방의 대기근과 진휼, 화재, 이양선 출몰, 어부들의 일본 표류 사실 등이 기록되어 주목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간성읍지』
『관동읍지』
『관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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