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나, 거제칠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과 통합되어 2007년 7월 31일 사적 거제현 관아로 승격, 지정되었다. 2021년 12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9칸, 측면 3칸. 본래 1422년(세종 4) 기성(岐城, 거제의 옛지명) 7진(鎭)의 군영(軍營)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고현(古縣)에 건립되었다.
1663년(현종 4) 고현성을 폐쇄함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의 기성관은 1892년(고종 29)에 중건한 것을 1976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조선시대 거제현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옥포(玉浦) · 조라(助羅) · 가배(加背) · 영등(永登) · 장목(長木) · 지세포(知世浦) · 율포(栗浦) 등 7진을 두었다.
그 뒤 1470년(성종 원년) 거제현을 거제부로 승격 개편하여 문무(文武)를 통할하게 하였다. 지리적 요충에 위치했던 고현성(古縣城)이 거제 7진의 통할영(統轄營)이 되면서 기성관은 거제부의 행정과 군사를 통괄하는 중심 건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중 고현성이 함락됨에 따라 1663년(현종 4)에는 성(城)을 폐쇄하고 거제현의 관아와 기성관을 거제면으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기성관은 현 위치에 자리잡았다.
이 건물은 창호나 벽체 없이 통간으로 된 마룻바닥을 갖춘 큰 누각의 모습이다. 외관을 볼 때 군영 청사보다는 객사로 건립된 건물로 보인다.
기단은 매끈하게 다듬은 장대석으로 처리했지만, 주초는 막돌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여서 중건이나 이건할 때 기단을 개축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은 주두(柱頭) 위에만 공포를 둔 주심포 형식으로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받쳤다.
기둥 바깥에 외목도리를 설치하고, 내부에 두 개의 고주(高柱)와 7개의 도리를 갖는 2고주 7량의 구조이다. 지붕은 건물의 중앙부 3칸은 솟을지붕이며, 좌우 지붕은 이보다 낮추어 팔작지붕으로 처리했다.
이것은 객사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붕형식이다. 이 건물은 단청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로 볼 때 통영의 세병관(洗兵館),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와 더불어 경남의 4대 전통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