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건물.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재건된 것이다.
이 건물은 기둥의 배흘림이 약하고 공포대의 높이에 비해 기둥의 높이는 낮은 편이다. 건물 중앙의 어간(御間)과 좌우 협간(夾間)의 간격이 같으며, 공포의 구성은 외삼출목 내사출목이다.
제공(諸工)은 앙서형[仰舌形]으로 굽은 곳은 연화문(蓮花文)으로 장식하고 마구리는 수직에 가깝게 잘랐다. 첨차의 길이는 주심 소첨차와 출목 소첨차, 그리고 주심 대첨차와 출목 대첨차가 거의 같다.
첨차에는 공안(工眼)이 없고 마구리를 수직으로 잘랐다. 건물 내부의 제공 형태는 첨차와 유사한 교두형이며, 맨 위의 제공을 용머리 형태로 만들어 대들보를 받쳤다.
건물의 구조는 2고주(高柱) 5량으로, 종보는 대들보 위에 별장여를 두고 보아지와 판대공으로 결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로 내민 길이가 비교적 짧으며, 처마선의 끝이 매우 높이 들려 팔작지붕과 같은 느낌을 준다.
천장은 3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공포(栱包)가 있는 부분은 순각판(巡閣板 : 각 출목 사이를 첨차 위쪽에서 막아 댄 반자널)으로 중도리까지는 빗천장으로, 가운데 부분은 종보까지 높여 우물천장으로 구성하였다.
우물천장의 소란반자는 보상화문으로 아름답게 치장했다. 내부에서 전면 협간과 어간 사이의 기둥 2개를 줄였으며, 뒷부분에는 열을 맞추어 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고 앞에 불단을 조성하여 탱화를 걸었다.
전반적인 치목수법과 세부장식을 볼 때 근래에 중수되면서 많이 변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건물은 다포계 맞배집으로 장식적인 공포형식과 가구수법, 그리고 끝이 심하게 들린 처마선과 내부공간 구성 등 조선 후기 불전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