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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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창원 진해 유주비각
창원 진해 유주비각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김수로왕비 허태후의 전설 관련 비각.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창원 유주비각(昌原 維舟碑閣)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88년 12월 23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산 222,223,197
목차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김수로왕비 허태후의 전설 관련 비각.
내용

1988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대 가락국(駕洛國)의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 허태후(許太后)의 전설과 관련된 곳으로, 용원동 앞바다의 작은 섬을 망산도, 이 섬의 동남방 70m 해상의 바위섬을 유주암이라 부른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허태후 관련 설화는 다음과 같다.

서기 48년에 가락국의 구간(九干)들이 수로왕에게 왕비를 맞아들이기를 청하자, 왕은 자신의 왕비는 하늘이 정해 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어 왕은 유천간(留天干)에게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는 승점(乘玷)에 나가 망을 보게 하였다. 어느날 서남쪽 해상에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을 단 배가 나타나자 유천간이 횃불을 들어 배를 인도하니 마침내 그 배는 망산도에 닿았고, 그 배에서 허태후 일행이 상륙하였다.

승점에 나가 있던 신귀간의 보고를 받은 왕은 친히 나아가 태후를 맞아들였다. 그날 밤 침전에서 태후가 말하기를 “소첩은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성은 허씨이며 이름은 황옥(黃玉)인데, 어느 날 꿈속에서 황천상제(皇天上帝)가 말씀하시기를 ‘가락국 수로왕은 본디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이나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가서 짝을 지어라.’ 하기에 달려 왔노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그녀를 왕비로 맞아 혼인하고 백오십세가 넘도록 장수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허태후가 처음으로 배에서 내린 곳이 망산도이며, 타고 온 돌배가 바닷속에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수로왕이 몸소 마중을 나와 이 섬에서 멀리 해상을 바라보며 기다렸다고 하여 망산도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1908년유주암과 망산도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유주각(維舟閣)을 건립하였는데, 이는 바로 허태후의 전기(傳記)를 길이 전하기 위한 것이다. 높이 1.73m, 폭 0.7m, 두께 0.36m의 석비 전면에는 ‘大駕洛國太祖王妃普州太后許氏維舟之地(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허씨 유주지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각은 정 · 측면 1칸인 목조 기와집으로 기단이 없이 장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주두(柱頭) 위에 연화문을 초각한 이익공을 두었고, 지붕은 부연(浮椽)을 둔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벽체 상부를 홍살로 장식한 전형적 비각의 형태이다. 고대 가락국의 김수로왕비 허태후의 전설과 관련된 유적으로 가야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경상남도문화재대관(慶尙南道文化財大觀)』(경상남도, 1995)
집필자
이호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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